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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세상과 소통하고 고민하는 판소리꾼

2009/11/04 01:27

[박원순의 희망탐사 120 ]

세상과 소통하고 고민하는 판소리꾼

면담일시 - 2009년 11월 1일 오후 2시

면담인사 - 이자람(노래하는 이자람)

면담징소 - 홍대 카페 <ㅎ>


경극과 가부키에 버금가는 우리의 판소리를 다시 되살렸다

- 이자람의 <사천가>에 쏟아지는 찬사


중국에 경극, 일본에 가부키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판소리라는 문화유산이 있다. 이웃 나라들에서 각종 연극 형식이 만들어질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연이은 전쟁으로 입체적인 연극이 발달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지만 극적인 요소들을 지닌 판소리는 무한한 가능성과 독자성이 있는 전통예술이다.‘사천가’는 판소리를 참신하게 현대화한 예다. 창극처럼 판소리를 음악극으로 무대에 올리는 것도 좋지만, 소리꾼이 부채 하나를 들고 일인다역에 해설까지 곁들이며 관객을 신명나게 하는 모습은 판소리 특유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현수정, 주간동아, 2009년 9월 23일자)

바로 이 <사천가>의 주인공이 이자람씨이다. 그녀는 작(가사), 작창(작곡), 감독, 소리를 모두 도맡아 했을 정도로 이 <사천가>는 소리꾼으로서의 이자람의 모든 끼가 유감없이 발휘된 판소리이다.

원작은 독일 작가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이다. 그러나 완전히 한국적 상황을 잘 설정함으로써 새로운 작품으로 태어난 것이다. 무엇보다도 “판소리의 풍자와 해학의 속성을 잘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단지 전통적 판소리에 머물지 않고 기존의 판소리를 패러디함으로써 오히려 그것을 현대인의 정서에 잘 융합시키고 있다.

이자람씨는 이제 겨우 서른을 갓넘긴 여성 소리꾼이다. 그러나 대화를 계속하면서 단순히 소리의 기예를 갖춘 연예인을 훨씬 넘어선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채게 되었다. 그녀는 21세기 우리 시대의 사회적 고민을 가슴에 안고 있는 철학적인 소리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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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판소리를 매력적으로 느낀다

-나는 의무적으로 하는 판소리는 싫다


우리 세대는 그렇게 자랐습니다. 독일민요를 우리 책에서 쉽게 접했고 노래라고 하면 그런 오선지에 있는 노래를 배웠어요. 그런데 운좋게 판소리를 만났고 평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대의 언어로서, 제가 어쩔 수없이 배운 기타 등 서양의 코드 위에 진행되는 음악도 하지 않을 수 없었구요.

이자람씨는 판소리를 의무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것이니까 지켜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 것이다. 판소리가 가장 매력적이고 끊임없이 도전하게 하기 때문에 한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사람과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그녀는 “21세기에 태어난 내가 매력적이라고 하면 분명 그것은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판소리가 우리의 전통문화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접근한다. 모든 장르의 문화예술처럼 아무런 편견없이 접근한다면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는데도 말이다. 늘 편견은 너무 단단한 법이다.

특히 서양음악을 불가피하게 일찍부터 접하고 또한 좋아하면서 동시에 판소리를 해야 했던 이자람씨는 처음 사춘기 때 정체성의 혼란이 있었다. 사천가를 함께 한 연출가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밴드로서 홍대 앞을 돌아다니는 나도 있고 인간문화재 선생님 집에서 레슨을 받고 다니는 나도 있습니다. 나는 도대체 어떤 곳에 서 있는가. 이렇게 자문도 하고 고민도 했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그 연출가 선생이 “21세기에 태어난 사람 그 자체”라고 했다. 그 두 가지가 섞여있는 것이 우리의 상황이고 본질이라는 것이다. 사실 홍대앞 클럽에서 밴드공연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 정체성의 혼란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런 고민은 없어졌다. 이제는 판소리가 자신의 안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한다고 한다. 판소리는 음악이고 이야기이고 자신을 고민하게 한 철학이고 무대 위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공연예술이다. 그래서 그것 안에서 끊임없이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그 시선 안에서 자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였다. 그래서 판소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자신이 해야 할 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미 한 사람의 철학자가 되어 있음을 느낀다.


굿장단과 삼바음악이 함께 하는 판소리

- 한때 잘나갔던 판소리가 황폐화된 이유


<사천가>는 전에 없던 시도였다. 자신도 작품이 나오기 전에는 상상이 안갔다고 할 정도이다. 한마디로  <사천가>는 판소리 완창이다. 1인이 서서 이야기를 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만들면서 그녀는 음악적으로 어떤 캐릭터는 판소리 장단 말고 굿장단도 좋겠다, 또 어떤 캐릭터는 아프리카 삼바리듬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음악을 일부러 풍부하게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다양한 음악이 들어왔다고 한다. 판소리나 전통악기 외에도 다른 악기들이 들어와서 채워주었다.

판소리 하면 우리는 창이라고 생각해요. 창이라는 이미지는 씨름대회 할 때 옆에서 하는 노래 정도로 생각하지요. 씨름 우승자 옆에서 화장 짙게 하고 한복 입고 나이든 여성들이 꼭 같이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그 어떤 국악인도 일찍이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자람씨가 정확히 지적하듯 우리 국민 대다수는 판소리에 대한 선입견이 바로 장사씨름대회 우승자 옆에서 몇 명의 한복입은 여성이 판소리 한가락 하는 것을 연상하는 정도이다. 사실 국악의 역사를 보면 참담하다. 한때 판소리꾼이 이효리같이 명성이 있고 LP판이 잘 팔렸던 시대가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그런 인기에 영합하여 녹음해주고 보수로 돈 대신에 아편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소리꾼들이 아편으로 중독된 시기가 있다. 그런 가난한 소리꾼들의 힘든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이자람씨는 그 후 인간문화재 제도가 생기면서 노래잘하고 로비 잘하던 사람들이 인간문화재가 되고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한다. 문화재가 된 사람이나 안된 사람이나 모두 피폐해졌다. 문화재가 안된 사람들은 그만두거나 사라졌다. 문화재 된 사람들은 그냥 선생의 것만 잘하면 되었고 따라서 판소리가 가졌던 시대비판성도 모두 사라졌다. 문화재 테두리 안에서만 있으면 먹고 살수가 있었던 것이다. 박제화된 박물관 안에서 안주하게 된 것이다.


21세기 판소리로서의 ‘판소리 브레히트’

이자람씨는 이런 상황에서 문화재 이전의 판소리를 복원하고 싶었다. 21세기 판소리 말이다. 자신이 이미 소리꾼으로 오래 살아왔지만 작(창작)을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막상 창작을 해 보려고 하니 작가로서의 공력이 하나도 없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기존에 훌륭한 희곡을 통해서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우연히 읽게 된 브레이트의 <사천의 선인> 속의 샨텐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스스로 착하게 살아보니 나만 바보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던 차에, 그리고 소외감이 심각하던 29살 나이에 새로운 창작의 주인공을 서울의 동대문에 있는 샨텐으로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다. 뚱뚱한 여자는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대신에 미모를 가진 권력은 우대받는 세태를 풍자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브레이트의 <사천의 선인>을 각색했다고 많이 회자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왔지만 나중에는 그 책을 덮어버렸다고 한다. 브레히트를 잘 몰랐고 그 번안이 충격이 될 줄도 몰랐다. 내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보니 우연히 만난 것이 <사천의 선인>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전혀 다른 우리의 <사천가>가 탄생할 수 있었다.

"<사천가>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 꺼낸, 열받고ㆍ우습고ㆍ신나고ㆍ구구절절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며, 판소리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나의 이야기입니다. 만들어낸 자가 뽐내고 싶은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소리꾼들이 <사천가>를 가슴에 들고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했으면 하는, 이 시대의 살아있는 판소리입니다."

판소리, 어떻게 자리잡아야 하는가


판소리를 하면서 판소리계라고 할까, 국악계라고 할까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개선되어야 하는지를 이자람씨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겸손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이렇게 답했다.

그런 것은 별도록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그런 겨를이 없었어요. 나자신과 싸우면서 <사천가>까지 왔습니다. 보통은 국악을 음악교과서에 더 많이 넣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교육만 바뀐다고 안됩니다. 교육과 매스 미디어가 함께 바뀌어야 하고 대중 역시 조금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상호작용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인간문화재제도는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밥그릇을 없애는 일이어서 힘들 것이구요. 그러기 전에 많은 노력과 대안이 찾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판소리가 온세상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편견은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다시 그 좋은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물론 모든 공연이나 음악 컬렉션에 판소리가 들어갈 자격이 있으며 동등하게 한자리는 잡아야 한다는 것이 이자람씨의 생각이다. 지금은 음악, 클래식, 국악 이렇데 서로가 동떨어져 있고 특히 판소리는 “저 끝에 놓여지는 장르에 불과”한 상황이다. 어떻게 그로부터 탈피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이번에 <사천가>가 분류로 보면 연극에 들어갔습니다. “올해의 좋은 연극”의 하나로 지정되었어요. 저는 이것이 맞다고 봅니다. 나 역시 고민중에 있습니다. 판소리이면서 연극이지요. <사천가>의 노력도 바로 이것입니다. 국악계에서도 연극계에서도 인정받고 싶은 것이 저의 솔직한 바람입니다. 그런데 국악게에서 먼저 평가받았으면 연극계에서 인정받기 힘들었을 거에요. 그 반대였기 때문에 지금은 국악계에서도 호평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절찬리 공연, 그러나 그 공연자는 공과금도 못내는 현실

그녀가 <사천가>의 연속 공연을 끝낸지 아직 얼마 안되었다. 사랑받는 작품이 되고 극찬을 받았다. 그런데 참 모순인 것은 그렇게 칭찬받고 사랑을 받은 작품의 주인공임데도 그녀는 여전히 공과금 내기 힘든 상황이다. “앞으로도 누군가 키워 주지 않을 것이고 나는 판소리 힘들게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혼란 속에 그녀는 여전히 산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왜 저렇게 고생하며 사느냐고 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자본의 아이러니이다. 자본이 있어야 무대에 올려질 수 있다. 그녀는 오늘 아침에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니콜 키드먼이 여성 성폭력의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답니다. 국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달라고 한 것이지요. 나는 과거에는 국가에서 돈을 받아 공연하는 것이 부끄러웠어요. 그러나 자본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안되는 시대가 되었죠. 나도 당당하게 정부에게 요구해야 하는 것인가 혼란스럽습니다.

사실 옛날 유럽의 중세시대에도 문화와 예술은 늘 후원자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 예술이 꽃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자람씨의 고민과 혼란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행복하게 괴롭다”고 말한다. 그런 고민조차 행복한 것이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국악에 넣어라

- 예술에 대한 천대로서의 한예종사건


이자람씨는 두 인간문화재의 이수자이다. 오정숙 수제자였던 은희진 선생이 그녀의 은사였다. 그 분의 제자로서 10년간 공부했고 8시간 완창도 했다. 그 분이 암으로 돌아가시면서 판소리를 그만 두었다. 그 후 오정숙 선생이 다시 판소리하라고 해서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훈련의 과정을 거쳐 정통 판소리에서 인정받기 때문에 <사천가>가 가능하다고 본다. 근본이 있어야 인정을 받는 것이다. 정통 판소리로 상을 받고 그 방면에서 인정을 받기 때문에 <사천가>가 성공했다는 것이다.

판소리 교습과 훈련을 거치면서 그녀가 배운 선생들은 모든 가사와 이야기에 집중해서 연희하라고 가르쳤다. 판소리계에서 “무대 위에 속한다”는 평을 받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문화재가 된 분이었다. 그래서 무대 위의 가사를 고민하고 노래하라고 배웠다. 보통은 음악적인 기능만 배운다. ‘나는 희망한다’고 하는 노래를 할 때 그 음만 배우는데 ‘내가’와 ‘희망한다’가 왜 붙었는지를 고민하라고 가르친다. 발음과 뜻에 대해 엄격하게 배운 것이다. 판소리는 음악일 뿐만아니라 연희였다. 그것을 배운 것이고 그런 문제의식이 <사천가>에서 잘 드러났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만약 판소리 전공 교수가 된다면 국악하는 학생들에게 전공필수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넣을 것입니다. 사고할 수 있어야 음악이 가능하죠. 한예종사건이 말이 안되요. 예술하는 아이들이 왜 이론을 배우냐는 것입니다. 한예종 다니는 남자친구를 옆에서 보는데 불쌍하더라구요. 예술에 대한 천대같이 느껴졌습니다. 기예하는 광대, 딴따라로만 보는 것이죠.



2009/11/04 01:27 2009/11/04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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