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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편지 1 ] 순례 그 후 - 도법스님의 근황

2009/08/05 00:15


아주 오랜만에 도법스님을 만났다. 근 5년여에 걸친 도보에 의한 전국 순례가 끝난지도 벌써 세월이 흘렀다. 지리산을 온 김에 도법스님 뵙기를 청했다. 지리산, 생명평화, 실상사, 화해상생, 귀농과 농촌살리기 - 이런 단어를 연상하면 늘 도법스님이 생각난다. 그는 이미 한 불교 스님, 한 종교인의 위상을 뛰어넘어 혼란스러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스승이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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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는 너무 번접스러우니 오히려 남원시내에서 만나자고 하여 광한루 뒤의 한 음식점으로 약속이 정해졌다. 우리가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는데 스님이 나타났다. 밀짚모자와 남루한 행색 그대로였다. 마치 농부가 밭에서 김매다가 온 행색과 다를 바가 없었다.

순례 끝난지 오래인데 뭐하시는지부터 물어보았다.. 최근 그이가 관심을 가지고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은 마을학교이다. 사람들이 모두 중앙정부 업무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을 가르치는 곳은 많지만 시골과 마을의 일을 가르치는 곳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지역에서 마을을 만들고 가꾸고 이끌어가는 리더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남원 실상사 부근의 귀정사라는 절터에 마을학교를 꾸리고자 준비중이다. 일단 마을의 리더들을 가르칠 일종의 강사들을 먼저 모아 이들이 스스로 큰 방향과 구체적인 커리큘럼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할 참이란다. 마을학교의 건물이나 기숙할 곳을 건축하는 일에서부터 모든 과정을 그들 스스로 꾸릴 수 있도록 하고 도법스님은 단지 판을 벌려준 것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겸손해한다. 그러나 판을 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그를 기다리는 것은 마을만들기라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일만이 아니었다. 마치 그가 전국순례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지역현안이 돌출되어 나왔다. 지리산의 댐건설과 케이블카 설치가  바로 그것이다. 민족의 성산인 지리산을 둘러싼 이 해묵은 논쟁이 또 터져나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훨씬 더 피곤한 입장에 있다고 한다. 과거에 이러한 개발에 반대하는데 앞장섰던 수경스님, 양재성 목사님 등은 모두 지역을 떠나고 주민들은 더욱 노령화되어 반대의 동력이 약화된 상태이다.  더구나 이웃 함양군의 경우 군수가 오히려 댐 건설을 총력으로 지지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일. 그래서 시작한 것이 경남, 전북, 전남 3개도의 불교사찰들을 묶어내는 일이었다. 이른바 <움직이는 선원>이 그 첫번째 작품이다. 지리산 주변을 돌며 어디에서나 선원을 열어 환경파괴의 실상을 알리고 민족의 성산, 지리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설파하고 토론하는 일이다.

이런 피곤한 싸움에도 도법스님은 여전히 나라걱정이다. 여야가 싸우고, 진보.보수가 격돌하고, 노사가 무한 대결하고, 지역이 갈등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하면 평화와 상생을 가져올 것인지 노심초사한다.  자신이 전국 순례를 하면서 곳곳에서 그런 갈등의 현장을 목격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동학군과 관군이 마지막으로 대결하였다는 장성에서는 아직도  관군 출신의 유족과 동학군 출신의 유족이 화해하지 못하고 상호 반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서울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천일기도를 해 보라고 제안한다. 기독교, 카톨릭, 불교, 원불교 등 모든 종파의 지도자들이 번갈아 화해.상생을 기원하는 천일기도를 열면 일반인들도 쉽게 따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단순히 기도만이 아니라 그렇게 벌어진 판에 다양한 토론과 세미나가 열리고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면서 서로 하나가 되어 보자는 것이다.  반드시 해야 될 일인데 어디서부터, 누가 먼저, 어떻게 불을 지필지가 문제이다.

어느듯 정치의 문제로 넘어갔다. 케이블카, 지리산댐 등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결국 정치였던 것이다.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견해에 도법스님은 동의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더 지속가능한 사회변화의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그는 간디와 네루의 이야기를 하였다. 간디는 결코 권력을 가지지 않았지만 실제 국민들에게 늘 호소력을 가졌다. 네루는 가장 중대한 결정을 할 때는 간디에게 찾아와 그 길을 물었다. 우리도 그런  사람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도법스님은 나에게 물었다. 간디와 네루 - 이 시대에우리는 그  두 사람이 모두 필요하다.

원래 실상사가 있는 남원 산내면은 인구가 7천명이 가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점점 줄고 있다. 작년에 2천명이던 인구가 올해는 1900명대로 더 줄었다. 농촌 사람들은 여전히 도시로 떠나고 있다. 도법스님의 말에 따르면 도시로 갈 형편이 안되어 못떠나는 것 뿐이지 형편만 되면 누구나 도시로 간다고 한다. 관광이 농촌을 되살릴 것이라고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이 곳에 일성콘도가 들어설 당시 지역주민들과 유지들은 그것이 이 지역에 관광객을 많이 끌어들일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그나마 잘 되던 민박집의 고객마저 다 끌어가버렸고 몇사람의 허드렛일 하던 지역주민마저 몇년후 그 호텔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제대로 교육받은 젊은이들을 원하지 시골사람들 그들이 고용할 것인가. 


산내면에는 뱀사골도 있고 실상사도 있다. 수많은 관광객, 등산객이 오지만, 그래서 일부 주민들이 돈을 벌지만 그 돈은 모두 도시로 다시 빠져나간다. 이 곳의 돈버는 주민들은 자식들 공부시키느라고 남원, 전주에 모두 집을 사둔 상태라고 한다. 이래저래 농촌은 위기이다. 그나마 도법스님과 실상사를 찾아 들어온 사람이 300명이 넘는다. 귀농학교, 대안학교인 작은학교, 인드라망공동체 등이 그와 실상사의 식솔들이다. 큰 느티나무아래에는 사람이 몰려드는 법이다. 도법스님의 꿈이 하루 빨리 실현되기를 바란다.








 






 
2009/08/05 00:15 2009/08/0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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