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전히 고난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박 : 아, 요즘 참여연대라는 단체에서 내가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데 내일 모레가 월급날인데 월급을 못주어서 말이야.
이 때만 해도 참여연대라는 이름은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월급날은 다가오는데 사무실 통장에는 돈이 별로 없다. 그냥 월급날을 넘길 판이다. 이리 저리 전화를 돌려본다. 전화 신호음이 몇 번 가기 전에 용기가 나지 않아 스스로 끊어버린다. 의외로 신호음이 한번밖에 안갔는데 상대방이 받아버렸다. 안부만 묻다가 차마 돈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채 전화를 끊는다. 용케 전화를 받아 그렇게 돈이야기까지 하는데만 6개월은 더 걸렸다. 그나마 저렇게 퇴짜를 당하기 일쑤였다. 세상 인심을 다 알만하였다. 나는 많이들 빌려주고 그랬는데 - - -
제2장면 B라는 교수님께 전화를 걸다
박 : 교수님, 이번에 책 내셨쟎아요? 잘 팔리나요?
빠듯한 살림을 꾸려나가느라고 안해본 일이 없던 시기였다. 교수님을 팔아 출판기념회를 하면 간단한 다과차려놓고 한 3만원씩 받으면 1-2천만원 남겼다. 심지어 출판기념회에 오지도 않는 제자들에게 거의 강매하다시피 하였다. 몇분 교수님이 이런 억지 행사에 그래도 응해주었다. 사실 혈액형이 A인 나는 누구 앞에 나서는 것이 몹시 두려웠던 사람이었다. 더구나 누구에게 돈 부탁하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싫었다. 어쩌자고 사무처장이라는 직책을 맡아서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월급못주어 자살하였다는 중소기업 사장의 심정이었다. 비굴하고 좌절스런 세월이 오래 지속되었다. 당시 참여연대 사무실은 용산역 앞에 있었다. 쥐들이 많아 아침에 출근하면 책상 위에 쥐똥이 수북히 쌓여 있었고 늘 몸이 가려웠다. 책상이 모자라 외출하고 돌아오면 다른 사람이 자기 책상에 앉아있곤 하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안해본 일이 없었다. 호프집 하느라고 어느 맥주회사에 맥주 얻어오던 일, 서화전을 열어 전국의 친지들에게 강매하던 일, 커리커추어전을 벌여 1인당 30만원 받아내던 일이 그런 사례였다. 돈 씀씀이를 줄이는 것도 크게 돈 버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땐가부터 내 사전에는 유료로 무엇을 사 오는 법이 없었다. 물건을 기부받았던 것이다. A4용지, 볼펜 등 문방구는 말할 것도 없고 나중에는 아예 <날개를 달아주십시요>라는 켐페인을 벌여 어떤 청소회사가 우리 사무실의 니스칠을 깨끗이 공짜로 해 준 사례도 있었다. 이러면서 내 머리도 하나씩 벗겨지고 희어져갔다. 그 후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를 거쳐 지금은 내가 모금의 최고 전문가가 되었다. 지금은 과거보다는 훨씬 전화도 잘 걸고 넉살도 떨고 잘 받아내기도 한다. 심지어 모금전문가학교를 열어 그 학교의 교장이 되기도 하였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하는 법이다. 시민운동가가 된다는 것은 온갖 영역에서 팔방미인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돈도 벌어와야 한다. 이런 2중고에서 해방되기가 어렵다. 월급은 없거나 작게 받는다. 그야말로 풍찬노숙의 길을 걸었던 독립운동가나 다름이 없다. <신동아>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이렇게 하소연하였다. "시민들이 회원도 안되어주고 관심도 없으니 우리도 모두 시민단체 문닫고 잘먹고 잘살러 가겠습니다. 이렇게 기자회견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 많이 듭니다.“ 이 기사 보고 5명이 참여연대 회원이 되어 주었다. 그래도 어찌 문을 닫을 수야 있겠는가. 그냥 푸념으로 해 본 소리인데 그래도 5명이나 회원이 되어 주셨으니 감사할 수밖에. 지금은 그런 모든 일이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우리 후배들에게도 되풀이되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도 만들고 지역재단도 만들도록 부추기고 있다. 돈 걱정에서 해방되도록 하고 싶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서는데 돈걱정으로 머리를 아프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쉽게 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나는 그 고난의 길 위에 서 있다.
|










사실, 아이들 무상교육, 의료, 적은 노동시간, 많은 쉼의 시간등
보다 풍족한 시대 풍요로운 삶을 살 조건을 만들어가고 그게 성공한다면
굳이 운영비 빼빠지게 모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시민 정서가 착해서 어렵지 않게 운영되어질 것이라고 보는데요.
제 친구가 환경련에서 근무할 때, 3년간 월급 없이 일했습니다. 지금은 떡하니 교수가 되어 있지만, 당시 많이 어려웠겠죠? 제가 아는 한 분은 유명 신문사 일 때려치우고 12만원 받고 한 시민단체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어려웠겠죠? 그에 비하면 지금 시민단체 조건은 참 많이 개선되어진 것 같아요. 문젠 시민들이 보다 좋은 인물을 선택할 수 있게 시민의식을 발효시키는 건데요..밀가루가 빵이 될 수 있는데는 이스트라는 게 들어갔기에 가능했겠죠? 자진납세하며 시민단체 위해 장전을 해 주는 이들이 늘어나게 하려면 세계관 눈높이를 조금씩 맞추어서 발효!!과정, 즉 상호소통과 교육, 이해과정이 있어야겠지요? 그런 과정이 참 없는 것 같아요. 이해시키고 교감해가는 과정.
전 이명박지지자 중 노사모회원보다 훨씬 훌륭한 분들도 많이 봤고, 진보를 자처하지만, 정말 수구적인 분도 봤는데요. 그런 편파적으로 보기보다는 냉철하게 이해해 시민들이 스스로 따를 수 있는 길들을 모색해봤으면 해요.
또, 지방. 어떤 곳은 세가 쌉니다. 지방분권을 외치기 전, 영향력있는 많은 분들이 지방에 희망을 만들기 위해 '살아주시면 해요.' 그래야 니도 그라나..개않나..갠찮으면 나도 낑길께. 그러죠. 논리를 이야기하기 전, 삶으로 보여주시면, 아마 많은 이들이 운영비를 내어주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케, 운영비를 이야기 하기 전, 삶으로 말해주셨으면 좋겠답니다.죤 시민이 훌륭한 정치판으로 만들 것이고, 운영비 정도는 어렵지 않게 모여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 사회가 속히 와야 대한민국에도 희망이 있다.
뉴라이트 같은 얼치기 관변단체에 국민의 피같은 세금 몰아주는
이명박 정부를 보고 있노라면 울화가 다 치민다
그동안 조그만 벤처기업을 운영하며 소시민으로 살아온 저에게 있어서 시민단체의 활동이란 강건너 일처럼 느껴지거나 때론 호기심의 대상이 되곤 했었는데, 희망제작소를 통해...원순닷컴의 E-mail 메시지를 통해 '사회공동체'에 대해 좀더 많은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도 불만과 불편, 부정을 탓하기 보다는 '따뜻한 세상-사람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세상을 바꾸자는 사회창안 활동에 적극 참여할 계획입니다. 많은 어려움속에서도 사회개선을 위해 애써오신 박원순 상임이사님과 더불어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삼복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고 늘 강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