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문화생활을 거의 못하는 저는 연구원들의 등에 떠밀려 영화를 보곤 합니다. 그동안 제가 본 영화란 거의 아름다운재단 간사들이나 희망제작소 연구원들과 함께 본 것이 전부일 겁니다. 그렇게 상영관에 본 다큐멘타리나 독립영화가 “영매”, “로드킬”등이에요. 이런 저런 통로를 통해 꼭 보라는 워낭소리를 역시 10여명의 연구원, 인턴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라고 휴지를 준비하라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습니다. 평소 이런 장면을 보면서 자주 눈물을 흘리는 소심한 사나이지만 이 날은 조금 달랐지요. 사실 저는 어릴 때 이런 것을 매일 보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미 오래된 일들이기는 하지만 워낭소리의 스토리는 농촌과 농부의 삶 그 자체이며, 일상이지요. 워낭소리의 주인공 할아버지처럼 우리 아버님도 늘 소와 함께 살았습니다. 저 역시 소꼴을 뜯어 먹이고 쇠죽을 끓이고 소 먹이러 동네 산을 오갔습니다. 아버지는 논이 더 깊게 갈릴 수 있도록 소가 끄는 쓰레에 저를 올라 태운 뒤 논을 갈기도 하였습니다. 소 등가죽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가분나리’(경상도 사투리. 표준말은 모르겠네요.)를 잡아 없애고 소의 잔등에서 딱딱하게 말라붙은 쇠똥을 긁어내는 일도 우리 아이들의 몫이었죠. 쇠죽을 끓일 때면 제 운동화도 함께 데워져 소 덕을 보기도 했습니다.(아버님이 시오리 새벽 등굣길에 춥지 말라고 쇠죽을 끓이는 솥뚜껑 위에 늘 저의 운동화를 데워주셨습니다. 그 바람에 새벽 등굣길의 그 찬바람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소는 이래 저래 모든 농부와 그 아이들의 친구이며 동행자였던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워낭소리에 열광할까요. 아무리 몸이 아파도 들판에 나가야 하는 농투성이 할아버지, 절대로 논과 밭의 작물에 농약을 칠 수 없다고 버티는 우리의 할아버지, 소가 힘들어 할 때 그 짐을 함께 지고 걸어가는 헌신의 할아버지 - 그 삶과 생각에 우리는 열광한 것입니다. 물질만능주의에 닳아빠진 현대인들의 삶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그 소박하고 풋풋한 삶에 사무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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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저도 보았지요. 저도 울지는 않았지만 좋은 영화였어요. 많은 생각하게 하는 영화지요. 온통 푸른색의 화면이 시원하고 좋았어요. 그래도 바쁘신중에 연구원들하고 가셨다니 참 잘하셨어요. 원순씨도 휴식이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