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에 강의를 갔습니다.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법고시 합격하면 동네에 축 000 사법고시 합격 하고 방을 붙이는데 그것보다는 근조 000 사법고시합격이라고 붙여야 한다. 왜냐하면 남의 고민의 대행을 업으로 삼는 고민대행업인데 어찌 그것이 축하할 일이냐. 곡을 할 일이지." "변호사가 돈 버는 것만 포기해 버리면 할 수 있는 좋은 일은 엄청나게 있다. 법률전문가를 친구로 두지 못한 사람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대충 이런식의 이야기를 하고 나오는데 어떤 꺼벙하게 생긴 사법연수원생 하나가 나를 따라 나왔습니다. 자신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다. 사실 그런 좋은 이야기를 하기는 하였지만 막상 이런 사법연수생을 정확히 어디다 어떻게 배치할지 아무런 계획이 없어 일순간 당황하였습니다. 나중에 찬찬히 생각해보니 아름다운재단이 이 친구의 최소한의 월급을 모금해서 감당해주고 이 친구는 그대신 전업적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소수자를 위해 변론을 하면 어떨까 하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 연수원생이 바로 염형국변호사였답니다. 키만 멀쑥하고 착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전업주부인 부인과 슬하에 3명의 아이까지 낳았답니다. 우리가 주는 월급만 갖고 살기에는 사실 힘에 부칠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아주 즐겁고 행복한 얼굴로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시작이었어요. 전업적 공익변호사들로 구성된 공익적 로펌의 최초의 탄생이기도 했지요. 이때부터 변호사가 계속 늘어나 지금은 7명의 전업변호사와 2명의 법률활동가가 이 공감을 꾸려가고 있답니다. 공감은 그동안 소외되고 낮은 곳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법률지원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주민노동자나 여성문제, 빈곤계층, 장애인 인권, 그리고 난민들의 소송지원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나 달려갑니다. 공익소송, 단체들의 법률활동 매뉴얼 작성, 법률지식을 나누어주는 법률학교, 공익사건의 중개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느라 눈코뜰새없이 바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들 활동에 대한 개인 기부가 점점 늘어나 지금은 제법 수지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금년 가을 쯤이면 공감이 아름다운재단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독자적 단체가 될 전망이랍니다. 세상에 한 좋은 씨앗이 떨어져 잎을 튀우고 무럭 무럭 자라 마침내 열매를 맺으려 하고 있습니다. 축하하고 지원해 주세요, 여러분! |










이제야 봤습니다. 이곳 블로그를 들여다본지 며칠밖에 안되었구요.
내가 꿈꾸어온 그러한 일들이 있었군요(변호사는 아니지만)
아.. 멋집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계속 꿈꾸며 소망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얼마든지 편하고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분들이
연약하고 낮은 곳의 이웃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두시는 일,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이겠기에 님들의 선택이
더욱 귀하게 여겨집니다.
절망감으로 비통했던 이 시기에 희망의 빛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변호사님들의 가정과 하시는 일에 늘 신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누구일까 사진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 보던게 기억이 납니다.
세상이 이렇게 악하고 잔인한 때에 이런 희망 가득한 소식을
들을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운 열매 맺음을 정말 축하드리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