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 기원전 479년 향년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 - 기원전 195년 공자의 후손이 한고조 유방으로부터 처음으로 작위를 받게 되었다. 유방은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곡부에 직접 가서 공자에게 제사를 지낸 황제이기도 했다. 공자 사후 그가 생전에 살았던 3칸의 방은 묘당으로 바뀌었는데, 첫 제사는 그저 공자 자손들의 집안일에 불과했지만, 유방이 다녀감으로 인해서 나라에서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전례를 만들었다. 60여년후 유방의 증손자인 한무제는 백가지 사상을 누르고 유가를 국가의 도로 선포하였고, 이로써 유가사상은 중국 전통문화의 주류가 되었다. (대륙의 찬란한 기억, 박지민 역, 광하해은문화공사, 북폴리오, 2004) 세상에서 버림받은 공자는 사후에 거의 황제와 동격의 대우를 받게 되었다. 역대 왕조가 바뀌면서도 공자의 지위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엄청난 토지와 재산이 주어졌고 이 일대를 통치할 권력도 주어졌다. 명청 시대 이후 황제가 공부에 하사한 땅이 100만묘묘(약 2억평)이 넘는다고 한다. 황제가 다녀가고 제사를 지내는 상황이니 오죽이나 했겠는가. 그 자손도 엄청 번성하여 곡부에서는 5명 중 한 명은 공씨성을 가졌다고 한다. 공가촌이란 이름을 가진 마을만 해도 1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 공자타운은 세 군데로 분류된다. 첫번째는 공묘로서 이것은 일종의 공자사원이다. 공자는 공묘 안의 대성전에서 제왕들과 마찬가지의 대우를 받으며 제사를 지낸다. 너무 대단하다. 자금성의 일부가 옮겨온 듯하다. 누가에 '지성'(최고의 성인)이라는 명칭이 여러군데서 발견된다. 두번재는 공부이다. 이 곳에는 직계 공씨 집안의 후손들이 살림을 살고 재산을 관리하는 곳이다. 세번째는 공림이다. 공자와 그 후손들이 묻히는 무덤이다. 현재 이 곳에 묻혀 있는 공씨가 1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비석도 없는 공자의 후손들 무덤이 즐비하다. 아니 여기 묻힌 것만해도 아주 큰 영광이라고 한다. 이 공묘와 공부, 공림에서는 2천년이 넘는 역사와 가족, 부귀와 영화 속에서 온갖 사연이 쌓이고 쌓였다. 가이드는 신나게 그 스토리들을 이야기한다. 때로는 우스꽝 스럽고 때로는 참담하기도 하다. 공자의 후손들이 누린 권력과 그 남용, 그것을 경계하는 온갖 이야기들이다. 살아서 누리지 못한 엄청난 영광을 공자는 죽어 누리게 되었다. 아니 공자가 아니라 그 자손들이 그랬다. 조상 잘 둔 덕에 온갖 영화를 다 누리게 된 것이다. 공묘 안에서 자신이 공자 74대손이라고 하면서 오는 관광객들과 사진도 찍어주고 기념품도 파는 가게 주인이 있었다(위 왼쪽 사진의 남자). 그 옆에는 버젓이 자신이 공자 74대손이라고 써 붙여 놓았다. 하기는 이 동네는 모두 공자 후손 아닌 사람이 없으니 신기할 것도 없다. 이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다. 아예 공자를 팔아 술회사를 차린 곳도 있다. 바로 '공부가'라는 술 회사이다. 이 동네 전신주에는 모두 이 술을 선전하는 플래카드가 나붙어 있다(아래 사진). 후손과 세상 사람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배울 생각보다는 공자를 팔아 장사할 생각만 가득하다. 공자가 벌떡 일어나 외칠 일이다. 요즘 세상 도덕이 모두 타락했노라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