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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외국인 근로자들의 수호천사 - 구로동 지구촌노동자인권센터

2009/05/03 07:26


<박원순의 희망탐사 104>

외국인 근로자들의 수호신

면담일시 - 2009년 4월 25일 오후 4시
면담인사 - 김해성(지구촌노동자인권센터)
면담장소 -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 1동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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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근로자의 천국, 구로 지구촌사랑나눔

그렇다. 이곳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는 천국이다. 거대한 본부이고 단지(컴플렉스, complex)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상담센터, 다문화 방송국, 신문사, 식당, 병원, 신학대학이 다 몰려 있다. 이 곳 식당에는 1천여명이 하루에 식사할 정도이다. 성남에서부터 시작한 그의 성전은 이렇게 커졌다. 그나마 작년에 전국에 산재하던 10여개의 상담센터를 모두 분리.독립시켜 이런 규모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는 중국동포들이 밀집되어 살고 있다고 한다. 구로지역은 과거 공장지역이다. 공장 근로자들이 쓰던 벌집(방 한칸, 부엌한칸, 공동화장실)이 비고 나서 이들이 점령한 것이다. 연변동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중국식당 가게들이 1천여개 즐비하다. 중국동포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므로 김목사는 2000년 1월 1일 이곳으로 옮겼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순간 이 곳의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는 영원히 안식할 때까지는 이 사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쉰다. 그의 일을 좀 덜어주거나 대신할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이 엄청난 규모의 일을 보면서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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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만외국인거주의 시대가 온다

지금 현재 한국사회가 격변하고 있다. 한국에 3개월 이상 장기체류하는 외국인이 117만명이라고 정부 스스로가 밝히고 있다. 문제는 지금이 아니라 이 100여만 명의 외국인 체류자가 앞으로도 계속 급증하리라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최저출산율을 보이고 있다. 유입인구보다 유출인구가 훨씬 많다. 3D업종 기피현상이 만연되어 있다. 인구부족, 노동력부족과 더불어 급격하게 노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제3세계로부터 점점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면서 말 그대로 다인종. 다문화사회가 되고 있다. 자연적으로 다문화.다인종의 많은 자녀들이 탄생되고 있다. 김목사는 이 단계에 이르러 목소리를 높인다.

언제까지 단일민족을 주장하고 살 수 있을 것인가. 왜 배달이라고 쓰는가. 배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단군이 태어난 게 환인과 웅녀의 결합으로 된 것이 아닌가. 혼혈로 시작한 것이 우리민족의 신화이다. 불경한 이야기이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들의 피 속에는 북방이 60% 남방이 40%가 섞여 있다. 세계에서 가장 배타적인 대도시가 서울이다. 인종차별위원회가 시정권고를 내리고 있다. 이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프랑스의 인종폭동사태, 그리스 아테네의 폭동사태가 우리에게서 터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 100여명 쏘아죽인 사람도 한국에서 이민간 사람이 적응못해 벌인 일이다. 다문화사회에 대한 대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도 벌어질 수 있다. 첫단추를 어떻게 꿸 것인가가 중요하다. 곧 1천만 외국인시대가 올 것이다.

어릴 때 사투리 때문에 폭행당하는 경험이 외국인인권의 수호자로 나서게

아주 시골 촌놈이던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왔다고 한다. 시골에서처럼 보자기에 도시락과 책을 싸서 학교 등하교를 했다. 숟가락 소리가 달그락 달그락 났다. 보자기에 책을 싸가니 아이들이 소풍왔냐고 놀렸다고 한다. 왕따의 서울생활 시작이 그랬다. 그 얼마 후 담임선생이 국어책을 읽게 했는데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모두들 사투리를 쓴다고 놀렸다. 속이 상해서 의자에 앉아 울고 있는데 담임이 반장으로 하여금 뺨을 세 대 때리게 했다. 김목사로 하여금 인권운동 30년을 한 것이 바로 이런 억울한 일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강자의 약자에 대한 횡포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다시 그의 울분이 시작된다.

조선족은 같은 민족이 아니냐. 콩딱지 만한 작은 나라에서 그렇게 사람을 차별하냐. 하물며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오죽하겠냐. 그들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해학목사님을 만나면서 성남에 살게 되었다. 처음에 도시빈민선교활동, 철거민, 노점상 지원활동을 하였다. 민중과 함께 사는 것이 허위의식이라고 생각하고 공장에 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엄두가 안났다. 내 주적이 누구일까? 군사독재정권일까? 미제국주의일까? 끊임없이 안주하고 타협하고 살아가려는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은 친구가 있는 망월동까지 성남에서부터 도보순례를 결심했다. 처음 하루 종일 걸었더니 물집이 잡혔고 그 다음날은 그 물집이 터졌다. 발목은 부어오르고 끝까지 망월동까지 갔다. 금식기도를 하고 공장을 갔다. 평생 노동자로 살면서 일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위장취업이 밝혀져 해고당했다. 산자교회를 만들었다. 부활해서 산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여기서 노동상담소를 차렸다. 한국인노동자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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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가서 김해성 목사 만나면 다 해결된다

그런데 노동자에 대한 관심과 활동은 바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관심으로 옮아갔다. 그당시 88올림픽을 거치면서 한국이 잘 사는 나라로 아시아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노동자대투쟁으로 한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올랐다. 1만 달러로 소득이 올라가면서 3D업종 기피현상이 높아졌고 중국동포들이 노점상을 하다가 산업현장으로 밀려왔다. 이들이 한국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인권침해를 당하고 도와달라고 찾아왔다. 이렇게 소문나기 시작한 것이 “성남 가서 김해성목사 만나면 다 해결된다”는 것이었다. 그 때의 정황과 활동을 김목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 해결하면 열명이 오고 열명 해결하면 백명이 찾아왔다. 심지어 내가 너무 과로하다 보니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나혼자 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하여 상담소도 만들고 법안제정운동을 벌이게 되었다. 또한 외국인지원단체를 소집해서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았다. 역할분담도 하고 제도를 바꾸고 법을 바꾸자는 운동을 벌였다. 캠페인도 하고 서명도 하는데 법무부에서 하지 말라고 전화가 왔다. 이틀 뒤 성남상담소 뒷골목을 막고 검문검색을 시작했다. 불법체류자를 막는다는 미명아래 내 활동을 제약하려 하였다. 어떻게 교회를 봉쇄할 수 있느냐, 선교탄압이라고 주장하면서 심각한 충돌이 났다. 나를 특수공무집행방해로 구속을 했다. 이것을 본 외국인 40여명이 쇠사슬을 몸에 묶어 명동성당에 들어가 농성을 했다.

재외동포법의 문제

- 역사의 수레바퀴는 진짜로 천천히 돈다

김목사나 당시 이 활동을 벌였던 사람들로서는 그 때 당시에는 법이 제정되리라고 기대는 안했다. 그렇지만 오래지 않은 1993년도에 외국인근로자고용등에관한법률이 제정되었다. 한편으로는 중국동포들의 경우 1999년 재외동포법이 제정되었다. 제2조 2항에 국적을 가지고 나간 사람이 대상이 된다. 결과적으로 1948년 이전에 나간 사람은 해당사항이 없는 것이다. 48년 전에 나간 사람은 식민지하에서 학병, 징용나간 사람, 독립운동 하러 간 사람들이다. 미국이나 유럽 교포는 특혜를 주고 그 이전의 중국.러시아 동포는 배제한다는 것이다. 이석연변호사를 통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받아냈다. 2004년 2월에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개정안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지금도 재외동포법을 적용안하고 있다. 항의하고 싸워 난리를 쳤더니 방문취업제를 실시하고 있다. 중국동포 중에서 고위전문직 종사자, 석.박사학위 소지자등에 대해 특혜를 주고 있을 정도이다. 김목사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진짜로 천천히 돈다. 감옥도 가고 매도 맞으면서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온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노력한만큼 결과적으로 열매를 맺고 있다. 물감이나 크레파스에서 살색없애기 운동을 벌여 바꾸어내기도 했다. 인종차별의식이 이런 일상적인 용어나 생각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인권위에 진정을 내서 지금은 연주황색이라고 한다. 이 이름도 어려워 많은 사람들의 청원 끝에 살구색으로 다시 바뀌었다. 작은 표현 하나의 문제이지만 그 결과는 적지 않은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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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과 외국인노동자의 차이

한국사회에서 그동안 언론켐페인이나 투쟁을 통해 외국인에 대한 인식이나 제도나 법률도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묘한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외국인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거나 좋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기보다는 외국인들을 잘 봐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반한감정이 높아진다는 인식이 바탕에 있다.

어느날부터 이주여성에 쏠리다가 지금은 다문화가정에 쏠리고 있다. 다문화가정은 한국국민들이고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도 국민이다. 외국인노동자들은 돈벌어 돌아갈 사람으로 본다. 그러니 이들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 이렇게 미묘한 차이가 있다.

다문화 초.중.고교를 만들자

- 언어적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자

벌써 오랫동안 외국인노동자, 다문화가정에 관한 다양한 사업을 하면서 그는 이 분야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가 되었다. 도대체 갈수록 늘어나는 이들 가정에 대해 어떤 대안이 가장 적절한 것일까?

우리가 하는 사업으로 다문화센터 방과후 학교, 어린이학교 등이 있다. 엄마의 출신국가가 10개국 이상이다. 그야말로 다문화어린이집인 셈이다. 이 아이들 중에서 죽고 싶다, 자살하고 싶다는 아이들이 있다. 여기 와서 지금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오바마는 백인엄마에 흑인아빠이다. 엄밀히 말하면 흑인이 아니다. 엄마가 피부가 검으면 아이도 검어진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검둥이라고 놀린다. 정체성의 혼란도 있고 적응하지 못해 결국 밑바닥에서 산다. 프랑스 외국인폭동이 올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이 우리에게도 벌어질 수있다.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의 초중등학교 재학생수가 해마다 70% 늘고 있다. 지금 이주민의 자제들이 막 초등학교를 왕창 들어가고 있는 시점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조금은 여유가 있다. 다문화사회를 잘 만들어가면 희망이 있고 아니면 파국으로 간다. 우리 어린이 집에는 노란머리의 백인도 있고 곱슬머리의 흑인도 있고 일본계, 동남아계 아이들도 있다. 혼자 있을 때는 왜 이럴까 고민했는데 여기 와서 안도를 한다. 그래서 다문화어린이집에 이어서 다문화중.고등학교를 만들려고 한다.

보통 아이들은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그 어머니의 언어를 배우게 한다. 중국동포의 경우 중국어를 계속 배우게 된다. 이 아이들이 그런 후 중문학과를 대학에서 가면 선생님보다 더 잘할 것이다. 그리고 모국어가 두 개가 된다. 공부 잘못하는 말썽꾸러기가 아니라 오히려 뛰어난 학생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외교관, 기업가, 방송인등으로 일할 수 있다. 언어의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자라는 아이를 반대로 최고의 장점으로 바꾸어주자는 것이다. 직접 김목사로부터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들의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들어본다.

피부색은 어찌할 것인가. 그것을 바꾸어줄 수 없다. 스리랑카의 어머니라면 그 아이는 검다. 이 아이에게 한국어에다가 스리랑카를 덧붙여 가르쳐준다. 요즘 우리나라 경찰이나 노동부 등에서 스리랑카 등 외국인을 특채한다. 순경이 아니라 경장으로 특채한다. 말 잘하면 외교부나 기업에서 취직할 수가 있다. 한국대표단이 스리랑카 가는데 유창한 스리랑카 구사할 줄 안다면 그 문제의 절반은 풀린다. 현재 외교관들이 많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다. 영어 정도만 유창하고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중국어 정도나 하지 웬만한 국가의 외국어 잘 하지 못한다. 스리랑카어 잘 하니까 본부의 스리랑카 부서에 근무하다가 나중에는 스리랑카 현지 공관에 가서 근무하고 다시 돌아와 본부에서 일하면 이 사람은 너무나 해당국가의 언어에 유창하고 사정을 잘 아니까 최고의 외교를 할 수 있다. 피부색이라는 최고의 약점도 최고의 강점으로 바꾸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원자폭탄으로 남한을 쓸어버리고 싶다

동포는 꿈에도 그리는 조국을 찾아왔는데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고국이라고 찾아왔는데 외국인 노동자나 불법체류자로 취급당한다. 반한감정이 하늘을 찌른다. 당신들이 우리와 피를 나눈 동포인가라고 묻는다. 남북한 전쟁나면 북한 편들겠다는 사람, 원자폭탄을 가지고 남한 쓸어버리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다. 동포들이 한국에 찾아와서 따뜻한 정을 기대하였던만큼 실망도 큰 것이다.

너무 섬뜩한 이야기이다. 탈북자, 조선족과 같은 한민족만이 아니다. 결국은 지구촌의 또다른 민족들도 결국 먹고 살기 위하여 머나먼 이국까지 찾아온 것이다. 마치 우리가 화와이에 사탕수수이민을 간 것이나 다를 것이 무엇인가. 21세기는 국경을 넘어 생존과 노동을 위하여 이주민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이주민들이 체류권과 더 나아가 시민권까지 인정하고 있다. 아니 우리는 이 지구라는 땅덩어리에 어차피 잠깐 빌려쓰는 존재가 아닌가. 조금은 더 우리가 개방적이고 포용력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김해성목사는 바로 우리의 수치와 냉대를 대신 속죄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그의 활동을 도와야 하는 이유이다.

2009/05/03 07:26 2009/05/03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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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찐롱이
    2009/07/08 11:21
    일부 몰지각한 중공 조선족 젊은이들이
    중공이 한국을 무시하듯
    한국인을 무시하는 언동을 일삼는다.
    오죽했으면 내가 이민국에 신고를 다 했겠는가
  2. 희망씨
    2009/06/29 13:32
    "천국에 가 보기나 한 것인지"님, 포스터 옆의 지도는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에서 제작, 배포한 지도가 맞습니다.^^ 구로 지구촌사랑나눔 단체에서 게시해둔 모습을 촬영하신 것 같네요. 글 내용에 지도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혹시라도 지구촌사랑나눔에서 만든 지도라고 이해하실 여지가 있었던 부분을 지적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천국에 가 보기나 한 것인지" 님께서 다른 관점의 이야기에 대해서 아시는 부분이 있다면 들려주셔도 좋을 것 같은데요, 다음에 기회가 되시면 글 남겨주세요.^^
  3. 천국에 가 보기나 한 것인지
    2009/06/29 09:10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겠슴돠. 포스터 옆에 지도는 지구촌인지 뭔지와 상관 없슴돠 반크에서 제작한 지도요. 희망제작소가 이렇게 허술하게 기사를 쓰는지 본인의 주장만 듣지 말고 주변 이야기도 들어가며 기사 좀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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