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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구로지역 풀뿌리운동의 중심, 구로시민센터

2009/04/30 23:47


<박원순의 희망탐사 102>


구로지역 풀뿌리운동의 중심, 구로시민센터


면담일시 - 2009년 4월 25일 오전 11시
면담인사 - 김성국(구로시민센터 대표)
장인홍(구로시민센터 정책위원)
하태한(교육담당 정책위원)

면담장소 - 서울 구로구 구로2동 730-94호


노동운동에서 지역운동으로

구로시민센터가 전개한 지역시민운동은 이러한 덧셈의 철학, 단결의 철학에 기초한 것이고, 우리를 최대한 확장하려는 실천입니다. 머릿속 관념이나 말로 “대중은 사회운동의 주인”이자 ‘우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만들고자 하는 진심으로부터의 열정이었습니다.(구로시민센터, 지역에서의 희망을, 10주년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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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시민센터 10주년에는 나도 축하의 글을 보낸 적이 있다. “ ‘대중 참여형의 새로운 대중운동’추진과 ‘지역사회의 힘있는 대안의 정치세력’이 되어 한국사회운동의 변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일관된 목표로 지역시민운동을 개척하고 나아가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모습을 알게 되면서 ‘지역이 희망이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라고 썼다. 한 지역조직이 10년을 넘어 구준한 운동을 하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구로시민센터가 입주해 있는 허름한 건물에서 만난 세 사람의 리더, 김성국.장인홍, 하태한은 이미 40줄에 들어선 장년들이었다. 전형적인 386세대인 이들은 학생시절부터 지금까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신념으로 한 치의 타협과 휴식없이 사회운동가의 길을 걸어왔다. 한편으로 존경스럽고 또 한편으로 측은하기도 하다. 이들이 그리던 세상은 과연 오고 있는 것일까? 세상은 그 노고에 답하고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을 좀 쉬게 만드는 길은 없을까?

구로시민센터는 97년 6월에 처음 문을 열었다. 재작년 2007년이 만 10주년째였다. 창립 당시는 구로지역이 노동운동, 사회운동이 활발하던 곳이었다. 노동운동의 외곽조직으로 다우리노동자회관이라는 단체와 노조에서 일하거나 사회단체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통일사랑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30여명이 과거의 노동운동과는 다른 전환을 고민하였다. 지역운동을 고민한 것이다. 진단과 모임이라는 강좌와 현장 탐방을 통해 새로운 단체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구로시민센터(좀 더 정확한 이름은 ‘더나은내일을여는구로시민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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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을 운동의 전면에 내세우다

이들은 이미 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인만큼 새로운 지역운동을 꿈꾸면서 특이한 출발을 보였다. 스스로는 겸손하게 “노동조합운동은 해 보았지만 지역운동을 몰랐다”고 말한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기상천외한 것이었다.

지역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의 욕구조사가 필요하다는 제기에 따라 지역주민욕구조사사업을 진행하였다. 구로구 19개동 중에서 우리의 유효한 사업범위인 10개둉을 선정하여 동별 남녀별, 연령별 비율에 따라 도출된 설문 샘플을 채우기 위해 맨몸으로 주민들과 만나게 되었다. 겨울철 문전박대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추진위원들이 지역주민을 직접 만날 수 있었고 이후 지역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회원들을 단련시키는 과정이 되었다.

그 결과 이들은 지역에서 대중참여형의 새로운 대중운동을 전개하여 대중적 토대를 강화하고 정치세력화에 기여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동, 여성, 청년, 문화 등 4개의 사업단위를 만들고 각 분야에서 열정적인 활동을 벌였다.

구로시민센터의 기본활동은 지역의 문제를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역주민을 조직하고 함께 하는 일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주민들과 함께 정당,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등을 감시.견제하고 지역현안에 적극 개입하여 주민의 이익을 옹호하며, 직접 선거에 참여하여 주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지역주부들이 주축이 되어 했던 교육관련 사업이었다. 그 중에서도 동화읽는어른모임이 제일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구로시민센터의 부설기관으로 다우리어린이전문서점을 개소하기도 했다. 그것을 중심으로 회원이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여기에 참여한 지역주민들, 특히 주부들이 소모임을 만들어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공부도 하고, 도시의 콘크리트 문화에 대체하는 생태적사회를 학습하고 실천하는 생태모임도 만들었다. 이 주부들의 자녀들이 학교로 들어가면서 학교운영위원회에도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지역운동이 그 주체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옮겨간 것이다. 이러한 주부사업의 성공은 구민회관 600명 들어오는 곳에 공연이 가능할 정도로 구로시민센터를 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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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운영위원회를 점령하다

학교운영위원회의 경우 이 구로지역에서만 32명의 운영위원들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친환경급식을 채택한다든지 초등학교 학습준비물로서 색종이, 도화지 등에 대한 예산을 많이 늘리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불필요한 어린이신문 근절하는 일도 이들의 역할이었다. 운영위원들이 모여 학교의 예산심의, 결산, 수련회 등에 대해 함께 논의했다고 한다. 여러 학교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한 학교의 운영위에서 다른 학교 사례를 들면 그만큼 설득하기가 쉬워졌다.

사실 학교 운영위원회가 학교별 교육의 자치와 협력의 모델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는데 사실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구로시민센터는 이 제도를 활용하여 실질적인 학부모와 지역인사의 참여를 위한 좋은 장치로 만들어냈다. 이들 운영위원을 지낸 사람가운데는 도서관 사서로 회원도 있닥 한다. 학교도서관에서 자원봉사하는 명예교사회가 있는데 구로시민센터 회원들이 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생협과 자활후견기관을 거느리다

대중적인 운동을 지향하는 구로시민센터의 사업은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자체 생협을 운영하고 있는데 구로시민생협이 그것이다. 한국생협연대 icoop지역조합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조합원이 220여명 된다고 한다. 생협도 여러 가지 형식이 있는데 icoop은 매장이 없이 주로 온라인으로 운영이 된다. 조합원들이 동이나 아파트 단위로 마을모임이 만들어진다. 생협을 중심으로 생태지도자과정이나 생태모임을 만들어 구청 환경과와 더불어 생태교실도 열기도 하였다. 생협이 구로지역에 두 개가 있다. 구로생협은 분당되기 전에 민주당중심으로 조직된 것인데 모두 icoop에 가입되어 있다고 한다. 생협이 아직 생소하고 초기단계에 있기 때문에 서로 경쟁이 되는 것은 아니다.

IMF때 이 지역에서 어려운 사람이 많아 실직자 대책을 고민하고 공부방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이것이 자활후견기관으로 이어져 현재 구로시민센터의 부설기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공부방은 파랑새나눔터공부방이라고 해서 운영되다가 지금은 독립되어 나갔다고 한다. 전국 시군구단위에서 하나씩의 자활후견기관이 만들어졌는데 IMF시기에 구로시민센터도 구로지역에서 만든 것이다. 이 구로 자활후견기관은 보건복지부로 위탁을 받아 실업극복을 위한 여러 사업을 벌이고 기초수급자가 자립.자활할 수 있는 교육이나 공동체활동을 하였다. 이 자할후견기관에 오는 분들은 동사무소에서 상담을 거쳐 온다고 한다. 현재는 집수리사업단, 반찬사업단, 원예사업단, 떡집 등을 운영하고 있고 이들은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다. 나머지는 사업단으로서 원예사업단, 떡집으로서 공동체를 준비중에 있다고 한다.

새 정부 들어서면서 감사도 많이 받고 귀챦아져 반납할까 고민도 했다고 한다. 더구나 우리 단체가 구청장이나 구청공무원을 상대로 한 다양한 감시운동도 하기 때문에 긴장관계가 있는 상태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는 상태이다. 행정기관 감시운동과 복지전달체계운동은 서로 양립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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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곁으로 가다

우리가 직접 조직을 만들어 주민이 오게 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들어가서 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민자치센터가 동마다 만들어져 있는데 우리도 주민자치위원으로 들어갔다. 구로 3동, 4동은 우리가 선거한 곳이기도 하다. 거기에다가 마을문고가 없어 우리가 적극 운동을 벌여 만들었다. 마을문고의 자원봉사자로서 우리 회원들도 대거 참여했다. 주민센터에서 수행하는 강좌에 구로시민센터에서 강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동네 단위의 지역의사결정에도 적극 참여했다.

주민을 오게도 하지만 우리가 주민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참 대단한 발상이다. 지역단체로서는 당연히 생각해보고 실천해볼만한 전략이다. 고기가 있는데 어딘들 못갈 것인가.

구로시민센터 만들기 전에 다우리어린이집이 있었는데 센터를 만들면서 이것이 부설기관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서울시 최초의 영아교육전담보육시설이 되었다.

처음에는 활동가들이 직접 운영을 했는데 지금은 보육교사 등의 실무자들이 맡고 있다. 자모회의도 존재하지만 제한된 관계를 맺는 것이어서 운동적 의미는 없다고 해서 활동가는 모두 뺐다고 한다. 민보련이나 지탁연 등 보육원의 연합체가 생기기는 했지만 지금은 운동적 의미가 약화된 상태이다. 정부영역에서 다 해 버리니 민간이 할 역할이 그만큼 줄은 것이기도 하다.

지역에서 풀뿌리통일운동을 벌이다

구로시민센터의 사업으로 특이한 것은 통일과 관련한 것이다. 지역운동에서 이런 것을 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주민들은 북한이나 통일이라는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이런 터부에 과감하게 도전하였다

몇 년간 통일대합창이라고 해서 구로구청 광장에서 일종의 지역판 열린음악회를 열었다고 한다. 한번에 지역주민 4-5천명 모인다고 하니 대단한 조직이고 위세이다. 여기서 공연도 하고 걷기대회도 개최했다. 이런 행사 한번 하면 재정이 3-4천만원 들어가는데 서울시로부터도 지원받고 추진위원을 모집해 이들로부터 소액씩 거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615 선언을 기념해서 상징적으로 615명의 추진위원을 모집했다. 인천TV와 함께 해서 이 행사가 방영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부스도 설치하고 선전도 했다.

어린이날도 여러 지역단체들이 합쳐 하루 즐겁게 노는 한마당을 연다. 부스도 10여개 설치하고 공연도 벌인다.

이렇게 하다 보니 재정부담과 노력이 많이 소요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걷기대회를 열었는데 구로구 관내를 청소년들이 통일에 관한 깃발을 들고 걷는 행사이다. 이 지역의 전교조선생님들의 협조가 컸다고 한다.

주민통일노래자랑 역시 주민들의 참여가 높았고 대북지원사업으로 연탄모으기사업도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민주평통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한계는 있지만 나무심기 등을 제안하고 실천하기도 했다. 구청에서 하는 민방위교육에도 한완상 총재, 김근식 교수 등 진보적 인사를 참여시켰다. 통장들이 민방위대장이기 때문에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 기회가 세상의 눈을 바꾸는데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매번 선거에 후보를 내다

더 중요한 것은 구로시민센터는 지역단위에서 계속 정치세력화를 실험해 왔다는 사실이다. 98년 지자체 선거시 구로4동에 무소속 시민후보를 냈는데 41표의 차이로 석패했다. 그렇지만 작은 동에서 전력을 기울이면 가능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2002년에는 두 개 동에 후보를 내서 한명은 당선되었고 또 한명은 12표 차이로 아깝게 졌다고 한다. 2006년에는 중선거구제로 바뀌니까 무소속이 불리해 두 사람이 모두 떨어졌다. 이들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정당과는 달리 직접 무소속후보를 낸 것이다.

당시 구로시민센터 출신 의원이 생기니까 정보력이 엄청 강화되었다고 한다. 의원으로서 우월적 지위를 가지게 되니까 마을문고를 만들 때나 어린이 도서관 만들 때, 통장 임명할 때 구로시민센터가 그동안 주장해온 정책이 많이 실현되었다. 당선된 이가 백혜영 의원이었는데 지금도 이 지역에서 어린이집 원장으로 지금도 일하고 있다고 한다.

위성도시인 일산 등에서는 시의원의 역할이 크다. 그러나 구의원들의 경우 넘어설 수 없는 벽도 있더라고 실토한다. 다른 데에서는 안하는 것을 우리는 왜 하냐는 것이 있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을 제안해도 다른 구에서 안하니 그쪽에서 하는 것을 보고 하자는 것이다. 소수자로서 겪는 문제라고 한다.

비판운동 vs. 거버넌스사업
- 늘 모순과 충돌로 어려운 지역운동

물론 구로시민센터는 주민의 행정참여사업으로 구로구 의회 방청, 예산분석 사업도 한다. 공무원노조, 민주노동당 등과 함께 구로지방자치시민연대를 만들었다. 구로구 시설관리공단의 인사문제, 부패문제가 생겨 이 단체가 운동을 벌여 이사장이 교체되었다. 구로구청장의 판공비공개를 안해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구로구내 초중교 학교가 48개이다. 운영위원 임기가 2년인데 지역마다 2명씩 있다. 구로구청에서 모든 초중고에 지역위원으로 학교마다 공무원을 2명씩 넣어 달라고 해서 이들이 당선이 되었다. 이것은 교육자치를 심각하게 위험을 초래하는 일이라고 문제제기했는데도 안물러나 결국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감사청구를 했다. 서울시로부터 이 공무원 운영위원들의 활동중단과 사퇴, 시정요구를 받았다. 결국 사표를 내게 된 것이다. 구청에 있는 교육진흥과가 이 업무의 담당인데 사퇴운동의 주동자로서 대립하다가 어느날 어린이날행사의 집행위원장으로서 찾아가 구로시민센터와의 사업협조를 부탁을 하게 된다. 이런 것이 많이 헷갈린다고 한다.

구로시민센터에서 또한 무료한방진료사업을 하는데 이 사업을 위해서 진료 명단을 구청으로부터 얻는다. 이렇게 싸우다가도 협력을 얻어야 한다. 학교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도서관살리기사업도 하지만 학교 운영위원장으로서 제동을 걸면 또 충돌하게 된다. 공무원이 운영위원으로 와 있으면 예산을 잘 얻을 수 있으리라고 학교에서는 생각하는데 우리 때문에 공무원들이 그만두었으니까 특정학교에서는 우리를 원망하는 경향도 생긴다. 이렇게 늘 공무원조직과는 모순과 충돌이 있으니 공직사회에서 이들을 어떻게 볼까 감히 상상이 된다.

일시적 연대활동은 있되 상설적 연대조직은 없다

구로시민센터는 지역과 밀착해서 운동하는 곳으로는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노동조합 조직이나 전교조 등이 있지만 이런 활동은 그동안 하지 못했다. 물론 연대조직인 구로지방자치시민센터에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주노총, 공무원노조등이 소속되어 있다. 어린이큰잔치준비위원회에는 전교조 남부지회, 보건의료연대, 고대병원노조, 구로건강복지센터, 구로여성회, 구로생협, 구로시민생협, 구로청년회, 열린사회구로시민회, 공부방연합회 등이 함께 일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 사업을 위한 연대조직이다. 급식조례를 만들기 위해 연대조직이 구성되기도 하였다.

과거에는 구로사랑시민협의회라는 상설적 연대기구가 결성되었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사안별, 한시적 연대조직으로 운영된다. 상설적 연대조직을 만들어보자고 하지만 관련 단체들이 하고 있는 사업이 다양하기 때문에 묶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은 당이라기 보다는 단체처럼 일하게 된다. 사안별로 보면 이렇게 협력이 잘되는 곳도 없다고 본다. 전체로 보면 운동역량은 많이 축소되었다는 것이 이들의 평가이다. 구로가 노동운동의 요람이었기 때문에 70-80여개 단체가 있었는데 지금은 굴뚝산업이 이전해 버리는 바람에 많이 위축되었고 따라서 운동조차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구청이 해 버리니 일이 사라진다

구로시민센터는 지난 10년간 많이 성장했는데 최근 몇 년간은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위축이 뚜렷하다. 회원 증대와 활력이 침체되어 있는 것이다. 앞으로 에너지를 축적하고 신규사업을 벌이고 대중을 다시 모아내야 하는 고민이 많다.

사업의 경우에는 오랜 기간 해 왔기 때문에 경험이 있고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회원들이 많이 안들어오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과거에는 주부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그 사업을 모두 구청이 해 버린다. 구청이 어린이 도서관도 만들고 책읽기사업도 다한다.

관이 하는 것이 좋기는 한데 우리가 또다른 측면에서 주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막상 그것을 못하고 있다. 마땅한 공간이 없어 지역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대중적 공간, 생협공간이나 카페 등을 만들려고 한다. 문턱없이 드나들 수있는 공간을 만들고 이들이 결국 새로운 회원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상근자들도 대부분 근무한지가 10년을 넘어 중추 상근자들이 지쳐 있는 상태이다. 쉬기도 하고 관성도 붙어 새로운 내적 에너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몬다. 스스로 몸이 많이 무거워졌고 그대로 고백한다. 스스로 공부를 해 보는데 잘 안된다는 것이다.

“떠나고 싶은 구로에서 살고 싶은 구로“
- 의식바뀐 주부들이 어느날 이사를 가 버린다

지역운동을 하기 어렵게 하는 것은 주민들이 이사를 해 버린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돈을 벌면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구로에 사는 분들의 의식이 스스로 구로에 산다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구로구는 머물고 살고 싶은 곳이라기보다는 여건이 좋은 곳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곳이다. 떠나고 싶은 구로에서 살고 싶은 구로로 만드는 것이 이들의 활동의 목표이고 구호이다.

그래서 회원들이 열심히 학교운영위원회 활동도 하고 주부사업도 했다. 이렇게 생각도 바뀌고 의식도 바뀌었는데 애들 학군이 좋은 데로 이사를 가 버리면 너무나 안타깝고 아쉬울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구단위로 보면 지역운동이 카버하기에 크다고 느낀다. 구로구가 43만정도 인구가 되는데 구로시민센터같은 지역운동이 카버하기에는 너무 큰 것이다. 구로시민센터에 적절한 것은 3-4개의 동이라고 볼 수 잇다. 그런데 구로 을지역만 해도 8개 동이다. 구로갑지역은 구로구청이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생활반경이 넓고 카버하기가 힘들다. 구단위의 시민운동단체도 결국 수박겉핡기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몇 개 동 단위에서 선거에 집중하면 효과도 많이 내고 주민들의 인지도도 높아질 것이고 지방의회에서의 승부도 가능하다.

구로시민센터가 처음부터 나름대로 내건 것이 대중 토대강화였다. 더 나아가 정치세력화가 목표였다. 그런 것은 지금도 유용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비전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새롭게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인데 그것이 가능할지 이들의 얼굴에는 확신이 보이지는 않아 걱정이 들었다.

한국지역운동의 연대가 필요하다

그동안 구로시민센터는 위례, 광진, 하남, 마포, 관악 등의 단체와 관계를 맺고 있다. 서울지방연대를 만들어보자는 흐름이 있었는데 정말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구로시민센터가 힘이 왕성할 때는 실제 자기 기반을 가진 지역단체들이 모여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하여 한국지역운동연대를 고민했다. 그러나 서울이 너무 커서 뭔가 모이자는 취지는 공감하는데 실제 하기는 대단히 어려웠다고 한다. 결국 서울지역에서 지역운동을 하는 것은 지난한 것이라는 점을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 지난한 과제에 도전하고 매달리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2009/04/30 23:47 2009/04/3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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