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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일시 - 2009년 4월 25일 오전 9시
양천구는 목동지역과 신월동지역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목동지역은 부자동네인데 신월동지역은 슬럼이다.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당연히 바로 이 신월동지역에 있다. 같은 서울이지만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달려와 이 센터를 찾았다. 이 센터 소장으로 있는 이상호씨는 자신이 지체장애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보다 훨씬 더 중증의 장애인들을 위해 자신의 장애는 돌아볼 틈이 없는 사람이다. 자리에 앉자말자 그는 그동안의 장애인 정책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다.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거의 전문학자이며 동시에 철학자이다. 보통의 장애인 운동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그의 말에 점점 더 빠져들게 된다. 이상호 소장은 나에게 이미 좋은 장애인문제에 관한 최고의 강사가 되어가고 있다.
“고용으로 말하면 지금 비정규직이 900만명이 넘는 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이 고용되기란 힘들다. 장애인복지전달체계나 장애인시설 안에서조차 중증장애인이 고용되지 않는다. 장애인 당사자 중심정책이 펼쳐지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지금 장애인정책에서 이런 모순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고용목표가 일반 고용시장이 아니라 장애인 시장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중증장애가 해결되면 경증장애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운동과 고용의 입장에서 장애인자립시설이 중요한 해결과제이다.”
양천장애인복지발전협의회
중증장애인 중심으로 장애인복지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차원에서 이런 단체를 꾸린 것은 처음이다. 바로 양천장애인복지발전협의회(양장협)가 그것이다. 복지기관, 복지단체는 물론이고 시민단체, 장애인 당사자단체와 정당 등이 모두 들어와 있다.
그동안 장애인 당사자단체가 반성해야 될 부분이 많이 있다. 이권단체 중심으로 활동해온 것이 사실이다. 상이용사단체를 포함해서 많은 장애인단체들이 자판기 달라고 구청에 들어 눕고 했다. 이런 이기주의적 성향을 극복하고 장애인중심으로 활동을 펼쳐가기 위해서 장애인 단체뿐만아니라 시민사회의 협력, 복지관, 정당단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선거때 소수자정책이 밀린다. 공약화 된다 해도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강제하려고 하면 자립생활센터뿐만아니라 지역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도 함께 해야 한다. 그래서 2005년에 이런 연합조직을 꾸렸다.
양장협에 들어와 있는 단체들을 보면 바로 이런 성격이 잘 나타나 있다. 장애인단체 부문으로서 지체장애인협회 양천구지회, 사람사랑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한국장애인기업협회 양천지회가 있고, 복지기관부문으로서 신곡종합사회복지관, 신월종합사회복지관, 신정종합사회복지관, 양천지역자활센터, 양천장애인종합복지관이 있으며, 시민사회단체부문으로서 교육자치시민회, 서울남서여성민우회가 있다.
장애인에게 일반적으로 노동이라고 하면 뭔가 생산을 의미하지만 이 단체가 생산하는 것은 사회서비스이다. 이 단체가 정책제안을 하고 모금회나 민간펀드를 통해 근로지원인시범사업 등을 벌이게 되었다고 한다. 내년도에는 이러한 정책이 일반화되어 노동부에 근로지원인 제도가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정책제안활동을 통해서 사회자본과 사회서비스를 만들고 그 전달에 있어서 장애인중심으로 장애인전달체계를 만드는 것이 이 단체의 업무인 것이다. 옛날에는 가발이나 신발, 라디오를 만들어내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의 가치, 생산의 가치라는 것이 사회적자본이나 사회적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도 포함된다. 장애인 당사자중심의 서비스전달체계 형성이 중요하다. 그동안 대리인제도가 지배해 왔다. 어릴 때는 부모가, 커서는 사회복지사, 의사, 전문가가 대리했다. 의존할수록 마마보이처럼 무능력이 화대된다. 장애인의 삶의 주기가 그랬다. 대리인이 아니라 장애인이 중심이 되어 정책도 생산해내야 당사자에게 서비스 정책 사회적 자본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당사자주의가 중요하다.
이상호 소장은 남성이 여성정책을 결정하면 심하게 표현하면 건강한 노동생산력을 어떻게 여성이 재생산하게 할까만 고민한다고 말한다. 모자보건법이 사실 그랬다. 여성이 중심되어 정책을 다루니까 성폭력특별법, 고용평등법등이 나올 수 있었다. 장애인정책도 그렇다.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면 전문가가 하니까 장애인을 수용시설로 보내고 집에 있는 것을 전제로 도시락이나 배달해주는 정책이 해방 이후 지금까지 죽 이어졌다. 좀 더 본질적으로 보면 대리인들이 정책을 결정해 왔으니까 그랬다고 이상호 소장은 주장한다. 장애인들이 직접 제안, 정책결정, 실천에 역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의 하치오지시에 가 보고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떤 계획을 짤 때 교수, 공무원 등이 관여한다. 그런데 이 시에는 신체장애인, 지적 장애인, 정신장애인, 아동장애인등이 각 2명의 대표를 선출해서 책정위원회를 만들고 시장에게 제언하고 시민들과의 공청회 등을 통한 피드백을 통하여 시장이 의회에 보고하고 의회가 승인하는 과정을 밟는다고 한다. 대리인이 아니고 철저히 장애인이 참여하는 것이다. 신체장애인이 열번 회의를 하면 지적.정신.아동장애인들을 수십번 회의를 해야 하는데 이 긴 과정을 모두 인내하고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문제는 장애인이 가장 잘 안다”는 것이 이상호 소장의 지론이다. 그 스스로 장애인이면서 단순히 시혜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장애인에게 큰 권리와 이익, 빛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 단체를 운영하느냐고 물으니 “우리도 운영을 해야 하니까 정부지원금 외에 활동보조서비스를 통한 수익을 얻는다. 바우처사업을 우리가 수행한다. 양천구에서는 세군데가 있는데 장애인 당사자가 우리를 선택하면 우리가 수행하고 일정한 수수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비용으로 계속 이 활동을 유지할 수있으니 참 다행이다.
양장협은 설립 이후 짧은 시간 안에 양천지역에서 독보적이고 대표적인 장애인운동단체가 되었다. 이들이 벌인 활동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장애인 정책을 장애인단체들의 닫힌 공간에서 선거직 후보나 공직자들 앞에 옮겨놓은 것이다. 이들이 선택한 수단이나 광장도 아주 유효적절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장애인들이 한 국민으로서, 주권자로서,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자각하고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바로 다음과 같은 기막한 발상이었다.
1.구의원 후보자 장애인정책학교
이상호 소장은 양장협이 벌인 이런 캠페인과 토론 등에 대해 이렇게 저간의 사정과 의미를 설명했다.
“구의회 후보자들을 모시고 장애정책학교라는 토론회를 열었는데 사실 토론할 것이 없었다. 이 분들이 장애인 문제에 대해 워낙 모르기 때문에 가르쳐야 했다. 구청장 후보 초청 장애인정책토론회도 열었고 서약서도 받았다. 이 분들이 당선 이후에 정책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시혜와 동정, 복지가 아니라 인권과 정책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집합적으로 움직이니까 무시할 수가 없다. 양천구 사회복지중장기계획이라든가 비전 2010 계획안에 중증장애인자립시설이 모두 들어가게 되었다. 민간에서 이슈화한 것이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장애인, 집에서 나오다
이상호 소장은 점점 더 재미를 내게 되었다. 구청장과 구의원 후보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먼저 장애인들이 움직여야 했다. 바로 선거에 대한 당사자이자 유권자인 장애인들이 적극적으로 변화되고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거참여야말로 유권자의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 공직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최고의 전략이며 무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양장협의 활동은 장애인들에 대한 정치교육, 선거참여 운동으로 나아가게 된다.
당사자 선거참여가 중요한데 문제는 장애인들의 접근권. 편의시설이 없다는데 있다. 장애인들은 아예 집에서 나올 수도 없다. 소득, 시민사회 참여 등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일반인에 비해 선거와 정치 불감증이 심각하다. 장애인의 선거참여가 왜 중요한지를 함께 인식하고 공유하기 위해 선거학교, 장애인선거참가 캠페인, 정책학교를 열게 된 이유이다.
장애인의 기본적인 투표참여를 가로막는 물리적 환경에 대해서는 참여연대 사회복지특별위원회가 1996년 총선거 때 ‘장애인 투표소 설치 예정 장소 변경 등 대책요청’ 요구서를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전국 1만3천780개의 투표소 중 1층의 장소에 투표장소가 있는 경우는 17%밖에 안되었고 승강기나 휠체어 리프트가 있는 투표소는 62개에 불과했다. 계단 대신 장애인 통로가 있는 투표소는 2,094개였고 안내요원이나 편의시설도 미비했으며 중증장애인을 위한 부재자투표의 홍보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상호 소장이 장애인의 정치적 참여와 인식을 제고하는 활동에 열정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참담한 현실에 있었다.
장애인의 다양한 권리를 획득하고 장애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어쩌면 장애인들이 직접 선거에 입후보하여 의회에 진출하는 방법과 비례대표나 할당제를 통해 의회에 진출하는 두가지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 하겠다. 그러나 이것 뿐만 아니라 장애인 스스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정책 결정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장애인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까지 가기 위해서는 몇가지 준비와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준비와 과정이 바로 양천지역에서 이상호 소장이 벌인 정책학교, 구청장 후보 초청 장애인정책토론회, 선거학교, 정책공개질의 등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들이 정리해낸 양천구 10대 실천과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막상 듣고 보니 11개이다. 아마도 이들의 요구는 아무리 주장해도 모자람이 큰 모양이다.
1.장애인 참정권의 보장
필터링효과 - 이권개입의 방지
시민사회조직 대표, 언론 대표, 복지관 관장등이 모여 자립생활운동과 대안문화라는 워크샵을 열었다.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나가면 서비스는 장애인이 받지만 소득은 주민에게 가고 이것을 통해 장애인의 사회활동이 확대되고 공동체적 질서가 복원된다. 장애인문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목표로 하는 민주적 참가와 대안문화가 가능해진다. 양장협은 이런 것을 논의하고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된다. 이러한 양장협의 다양한 정책운동은 필터링효과가 있다고 이상호 소장은 말한다. 당사자인 장애인단체만 모아두면 이권개입의 열망과 실제 이권개입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건강한 시민사회, 지역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 정당이 함께 하면 이권을 노리는 장애인단체들이 긴장감을 가지거나 눈치를 보게 된다고 한다. 더군다나 정책을 가지고 논의를 하니까 누가 떡 더 달라는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동안 전국적으로 장애인단체들이 이권적 성향이 농후하다고 그는 말한다. 장애인단체만은 아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관변단체들이 이런 식이라고 한다. 과거 상이군경들이 그랬고 지금의 바르게살기 등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의 여러 다양한 기관과 사람이 모이면 대놓고 힘자랑 할 수 없다고 한다. 이소장은 바로 이런 효과를 노리고 양장협을 만들었고 또한 그의 의도는 적중했다.
시혜와 동정을 넘어
작년 10월에는 시월애장애인인권영화한마당을 열었다. ‘시월애’라는 말이 시혜와 동정을 넘는다는 뜻이다. 인권이라는 주제로 공청회를 하면 원래 좀 딱딱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소프트한 접근을 한 것이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 휠체어 마라톤도 열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정당, 사회단체들이 모두 참여했다. 장애인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장애인이 사회에 있다는 것을 알려내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외국의 연수를 통해 배우다
배움과 토론의 연장선상에서 양장협 사람들은 일본에 연수도 갔다. 자립생활운동은 미국에서 1974년 애드 로버츠라는 중증장애인이 창시하였다고 한다. 그이는 산소호흡기를 통해 생활한 엄청난 중증장애인이었다. 원래 병원에서만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자립생활하겠다고 뛰쳐 나왔다. 병원에 교수 보내 공부시켜 주겠다고 하는 것을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겠다고 고집을 피워 결국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자신이 다니던 버클리대학 안에 만들게 되었다. 일본에 있는 사람들이 버클리 연수 가서 그것을 배워오고 우리는 일본에서 배워왔다. 자립생활시설의 원조인 미국에 가고 싶었지만 비싸서 못가고 대신 일본으로 갔다는 것이다. 꿩대신 닭이라고 어디서든 배움에 나라가 무슨 장애가 될까. 이 연수가 바로 양장협 주최로 시행한 ‘모자이크 네트워크 일본연수’였다. 다양한 계층, 서로 다른 섹터가 모인다고 해서 모자이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정당관계자, 시만단체, 복지기관 사람들이 함게 간 것이다. 모두 말로만 듣다가 직접 가서 보니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수용시설중심의 정책이 전면적으로 재고될 때가 되었다, 활동보조가 활성화되면 적극적 사회참여, 공동체복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언어장애가 심각한 한 일본인은 반전운동가가 되어 있었다. 장애가 더 이상 장애인들의 사회활동, 지평의 확대에 제한으로 작동될 수 없게 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조례 - 일본 연수가 맺은 열매
민간에서 이야기한 것이 공공의 계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좋은데 그 다음이 문제이다. 즉 그렇게 세운 공공의 계획을 지역에서 구체적으로 강제하기 위한 조치로서 조례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천구에서는 작년부터 조례제정운동을 벌였다. 바로 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조례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이 조례는 4월 29일 통과될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통상 의원님들이 한두사람 발의하는데 이 조례의 경우 절반인 10명이 발의했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이 조례제정을 주도한 의원들이 일본연수를 힘께 다녀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의원들과 더불어 행정공무원도 함께 갔다 오면서 다같이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무엇인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 법안에 적극적인 지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연수가 가져온 중요한 결과물이며 열매였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과 협력이 양장협 활동의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이상호 소장은 이 조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이 조례는 젼국에서 6-8번째 만들어진 것이다, 조례내용의 핵심키워드는 두가지다. 우선 활동보조서비스가 중앙예산에서만 하는데 양천구 특례를 만들어 양천구 예산으로 한다는 것이다. 자립시설에서 활동하려면 활동보조서비스가 더 많이 필요한데 시설생활인특례를 만들어 구청 예산으로 지원하게 되는 것이다. 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 당사자중심의 전달체계 의미와 중증장애인 고용모델이라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그런데 양천구의 이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는 4년이상 근속한 중증1급장애인은 87%이다. 이런 모델이 전국적으로 없다. 왜냐하면 2년이면 보호작업장에서 종료되어 집으로 가거나 수용시설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고용시설에서는 아예 일할 가능성조차 없다. 이러한 고용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 조례의 또다른 의미이다.
양장협의 활동으로 구청의 사업계획안 속에 중증장애이들을 위한 시설 설치와 지원, 그리고 예산계획이 서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답보하는 조례가 생긴 것이다. 중증장애인들에게는 희망이 생겼다는 말이다. 한번은 장애인 스스로 접근권조사 사업을 한 후 회식을 하는데 1급장애인이 울기 시작했다. 그는 태어나서 회식을 처음 한다고 했다. 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수익성이나 지속가능성도 중요하지만 가족에게 짐이기만 했던 사람이 당당하게 장애인문제에 대해 스스로 해결, 제안, 실천의 주체로 나서게 된 것이 무한대의 자존감을 준 것이다. 이상호 소장은 이렇게 그 자존감에 대해 말한다.
자립생활해서 돈을 벌지는 못한다. 이곳에서도 100여만원을 겨우 준다.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 중증장애인에게 있다. 나는 사기로 이렇게 늘 말한다. “네의 월급은 적으나 수천억대의 공익적 가치를 만드는 자격을 주마.”라고.
내가 만약 국회의원,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물어보았다. 당신이 양천구청장이 되거나 서울시장 아니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이 되면 어떤 장애인정책으로 우리나라를 장애인천국으로 만들 수 있겠냐고 물어본 것이다. 그는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이렇게 정리해 주었다.
1.수용시설을 싹 없애겠다. 그분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야 한다. 장애인인식개선사업을 하면 비장애인들이 갑자기 휠체어 타고 나온다. 본령으로 따지면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많이 나오면 저절로 인식이 개선된다. 그동안 수용이나 재가시설정책이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2. 경증장애인중심에서 중증장애인중심으로 정책을 바꿔어야 한다. 신체장애에서 지적.정시장애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 지금 정신장애에서는 탈원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장애유형중에서 가극심한 차별을 받는 것이 정신장애자들이다. 이들을 정책중심에 두어야 한다. 이것만 해결되면 신체장애는 저절로 해결된다. 3.대리인주의는 이미 말한 것처럼 극복되어야 하고 당사자주의, 즉 장애인이 직접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4. 중증장애인의 건강한 삶에 획기적이며 가장 중요한 자립생활센터를 확대하겠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과 비슷하게는 한다. 다만 우리는 법만 선언적으로 만든다. 그런데 일본은 구체적인 조치를 좋아한다. 구체적인 정책목표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악어의 눈물?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장애인차별법이 사문화되었다고 한다. 담당부서가 국가인권위원회인데 축소시켜버렸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서 장애인권익증진과는 없어졌고 다른 과에 통폐합되었다. 저상버스의 경우 30%예산이 감소되었다. 장애인에 대한 특수교육예산도 축소되었다. 작년에 법은 통과되었는데 예산이 축소된 것이다. 장애인 LPG지원제도 내년에는 없어진다. 이런 상황을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정말 황당하다. 장애인 집에 있으라는 이야기다. 얼마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시설가서 울었다고 한다. 장애인계에서는 악어의 눈물이라고 한다. 예산 다 축소해 놓고 왜 우는데?라는 것이다. 저항은 한다. 그런데 시민사회나 진보계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마찬가지다. 정부지원을 받는 거의 모든 시설에 퇴직공직자나 토호세력을 심는 일을 많이 한다. 구청장의 사돈팔촌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끼어 들어오는 것이다 .장애인 판정센터가 내년에 만들어진다. 바우처 양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 판정센터에 공무원이 앉으면 민간단체를 잡아버린다. 모두 줄을 서게 되는 것이다. 좀 더 많은 시간을 받기 위헤서는 토호세력 넣어달라고 하면 안할 수가 없다. 직영은 말할 것도 없고 위탁기관도 이런 청탁을 거절할 수가 없다.
사유화된 복지시설권력 - 점진적으로 바꿔내야
역사적으로 보면 복지시설권력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광기의 역사>에 보면 장애인은 태워 없앴다. 16세기에 수용시설이 생기면서 곧장 사유화되었다. 공공의 예산이 거의 100%들어가는데 자기 것이라고 우긴다. 사학이나 비슷하다. 시설의 원장들이 그렇게 말한다. 자기 예산은 안들인다. 오히펴 판공비까지 받는다. 정책을 그렇게 끌고 왔다. 이들의 권력은 마피아수준이다.
그의 독한 비판은 계속 이어진다. 그러나 단지 그만의 말이 아니다. 지역에서 사회복지 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의 보편적인 상황이다.
국회의원들이 우리 말을 듣고 고치려고 하면 엄청 로비가 들어온다. 원생들을 여의도에 수만명 풀겠다고 협박한다. 그 저항이 두려운 것이다. 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반시설이다. 시설을 반대하는 것이다. 전두환정권타도하자고 했지 전두환정권각성하라고 하지 않았지 않는가. 반시설이 그런 것이다. 현재 수준에서는 싹 시설을 없앨 수는 없고 점진적으로 시설을 소규모화하고 점진적 탈시설정책을 펴야 한다.
이상호 원장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보니 그는 이미 한 지역의 장애인운동가가 아니다. 자신의 핍진한 경험과 활동의 역사를 통하여 이미 장애인문제에 관한 가장 정통한 전문가이자 전국적 활동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장애인문제연구회 울림터, 장애인운동청년연합, 한국장애인연맹 등에서 일했다고 한다. 중앙에서 일하다가 지역에 내려왔더니 싸울 이슈가 너무 많다고 말한다. 청소년문제, 여성문제 앞에 장애만 붙이면 모든 것이 힘들어진단다. 중앙에서 있을 때 제일 배고픈 것은 장애인을 일상적으로 못만난다는 사실이었다. 왜냐 하면 장애인들은 모두 집에서나 수용시설에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어디에서 일상적으로 만날 것이냐. 그것이 지역이라고 판단했다. 풀뿌리에서 일상적으로 만나고 중증장애인 문제에 집중해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운명적으로 지역운동가이다. |
101.풀뿌리장애인운동을 개척하다 -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상호 소장
2009/04/3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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