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희망탐사 85><2편>지역주민.주민단체와 함께 마포를 바꾸는 공무원 - 열정과 용기를 가진 공무원이 지역사회를 바꾼다 면담일시 - 2009년 3월 15일 오전 10시 30분 면담인사 - 이준범(마포구청 비서실장) 면담장소 - 서울 마포구 난지도길 30
행정 에이전시로 마음을 드래그하라 보기 홍대앞 상권의 데이터베이스화 사업의 시종 또 하나 재미있는 실패 스토리도 있다. 홍대 앞 상가들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 하자는 이 프로젝트는 참으로 좋은 아이디어였다.홍대 앞 상권이나 거리, 식당 등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 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태리음식을 먹고 싶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했더니 큰 대기업에서 많은 접촉이 왔다. 홍대앞의 박물관, 카페, 식당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자고 하는 것인데 예술가들이 개성 때문에 조사에 잘 응하지 않아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구청과 서울시, 이들 예술가들이 함께 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서울시에 제안했다. 1억 가량을 서울시에서 주어서 사업을 받아왔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이 인사로 다른 곳으로 가버려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말았다. 관에서 예산을 쓸 때 믿고 맡길 수 있는 재량이 있어야 하는데 예산회계법상의 제한으로 인해 어려움이 많았다. 관에서는 골격만 만들고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하면 좋았을텐데 자율성이 없었다. 관에서는 민간단체에 돈을 줄 때 골격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모두 개입한다. 돈주고 뺨맞는 사례가 생기는 것이다. 열심히 해서 돈 따 왔는데 제대로 못해 너무 미안하다. 결국은 관이 지나치게 개입함으로써 실패하고 만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프로젝트들이 공무원의 일방적 주장과 개입, 횡포로 인하여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는 것을 보았던가. 민간단체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하면 될텐데 사사건건 개입함으로써 민간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꺾고 마는 것을 너무도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사례는 그런 하나의 예일 뿐이다. 아현동 웨딩거리 활성화를 위한 노력 결국 행정의 요체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것을 가능한 한 반영함으로써 자치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열정을 다하게 하는 것이다. 이 단순한 원리를 이준범씨는 터득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일들이 내 밑바닥에 깔리면서 많은 사고의 변화가 있었다. 아현동 웨딩거리라는 곳이 있다. 서대문에서는 웨딩축제를 매년 봄에 한다. 마포쪽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조선일보에서는 이들이 강남으로 떠난다고 하는 기사도 있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면서 이들을 만나보니까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많았다. 서로 윈윈하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였다. 마포구청으로서는 지역의 활성화를 기할 수 있고 동시에 이들은 재정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좋은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아예 길의 일부 예컨대 1차선을 막아 축제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거리에서 웨딩쇼를 하면 사람들이 몰릴 일이었다. 호텔에서나 실내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결혼식을 하면 얼마나 의미도 있고 사람을 끌겠는가. 그냥 예산을 주고 알아서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대변인이 되고 욕구를 만나고 현장에서 함께 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는 예산을 지원해 줄까요, 몸으로 뛰는 것을 원하는가요 하고 물어보니 돈보다도 몸으로 뛰면서 경찰도 만나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하였다. 웨딩사업은 죽지 않고 계속 지속되고 있다. 앞으로 서대문과 연계되어 더 활발해 지면 하는 생각이 든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포구청 주민과 서대문구청 주민이 서로 따로 행사를 해 왔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간다. 그 양길의 웨딩샵들이 하나의 웨딩거리를 구성하고 있는데 말이다. 과거를 판다 -양화진 복원 프로젝트 이준범씨가 추진한 양화진복원사업도 큰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였다. 특히 그는 마포에 태어나 자라고 공부하고 지금도 공무원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외국인묘지에 가 보았다고 한다. 역사적 중요성은 말을 많이 들었는데 실제 가보니 베델, 언더우드 등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사람들이 정말 묻혀 있더라는 것이다. 실제 근대화 당시 우리나라 역사의 기틀을 만든 외국인이 다 묻혀 있다. 뿐만아니라 그 곳은 세계 역사상 천주교와 기독교인들의 성지가 한꺼번에 마포에 있다고 한다. 절두산 천주교 순교성지가 있고 기독교 선교사 묘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무지막지하게도 당산철교 지하철 2호선이 관통하고 지나가버린다. 이것은 두 번째 박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순교자들의 목을 자른 병인박해가 첫 번째이고 백년이 지나 당선철교를 놓아 묘지를 자른 것이 두 번째라는 것이다. 이 비극에 대해 이준범씨는 이렇게 말한다. 공공기관이 늘 박해만 해야 하는가. 환경박해 현장으로 남겨두면 좋겠다. 박해만 가했지 아무 것도 도와준 것이 없다. 우리나라가 경제 경제 하면서 앞만 보고 달렸는데 뒤를 보고도 가면 좋겠다. 우리를 도운 외국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지자체가 나서서 행사를 하면 좋겠다고 보았다. 쓰레기장이 있었는데 서울시 예산으로 아래에 지하주차장을 만들고 그 위에는 두 성지를 연결하는 양화진사업을 추진했다. 하드웨어 사업이 완공되어 가면서 소프트웨어 사업을 시작했다. 이 단계에서 그는 실제 많은 고민을 했다. 이것을 알리는 홍보차원에서 연극을 해보자고 했다. 막막해서 인터넷 홈페이지를 찾다가 연극 시놉시스 공모전을 벌였다고 한다. 돈을 주고 원고를 사고 다시 그것을 풀어내려니 극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대표적인 연극인이라고 할 오태석 선생을 찾아갔다. 그 와중에 관내 목화극단 회원이 주민으로 있어 오태석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동숭동으로 찾아가 양화진에 관한 ppt를 했다. 연극하는데 ppt 하는 곳이 없어 스크린을 만들어보라고 했다. 헝겊조가리를 가지고 금방 만들더라. ppt를 보고 양화진사랑이라는 시나리오를 오태석 감독이 직접 써서 공연을 했다. 그러나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구청장이 바뀌면서 활성화가 안되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사업은 관보다는 일반시민이나 관련 종교단체가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했다. 카톨릭은 이것을 영화촬영지 등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기독교 성지부분은 한경직목사가 기념관을 만든 뒤에는 무관심하다. 기독교에도 이야기하여 양화진 홍보관을 짓기로 하였다. 많은 관광객이나 순례객이 오는데 화장실도 없고 편의시설도 없고 진입로도 없다. 우리는 홍보관이 필요했고 기독교측에서는 편의시설이 필요했다. 우리는 부지를 제공하고 그쪽에서는 건물을 짓기로 했다.
용감함이 세상을 얻는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용감한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지역사업에 꼭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찾아가는 용감함을 지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공무원의 덕목만이 아니다. 후배공무원들이 이런 책을 보면서 새로운 상상력을 가졌으면 했다. 양화진 복원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원순 전 국사편찬위원장님도 당시의 이만열 위원장님도 다 만나 보았다. 한 분은 카톨릭이었고, 한 분은 크리스챤이었다. 지자체의 말단 공무원이 왔는데 모두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공무원 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끼고 배웠다. 서강대 조규만 교수님과 함께 술을 마시는 기회가 있었다. 이 분이 창업보육센터 소장으로 계셨다. 지역경제활성화 일을 하면서 마포구 관내의 기업인들을 도와주면 좋겠는데 서강대의 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면서 찾아갔다. 창업보육센터로서도 중소기업육성자금 지원을 받으려 하였다. 각구가 막 창업보육사업을 시작할 때였다. 이렇게 자문을 구하고 자주 만나고 술을 마시다 보니 만들어진 것이 마포구 상암동에 창업보육센터를 만들게 되었다. 우리는 부지를 제공하고 건물을 짓고 서강대는 위탁을 받아 장비와 기술을 제공하여 마포구 관내의 기업들의 창업을 지원하게 되었다.
10번을 찾아가면 안만나 줄 사람이 없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안만나주면 10번을 찾아가면 안만나줄 리가 없다”. 그야말로 10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가 없는 것이다.
의지를 가지면 누구나 다 만날 수 있다. 안할 뿐이다. 얻은 경험은 모르면 주변에 모두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공무원이라고 하면 도움을 주거나 자문을 해 주는데 인색하지 않더라. 이렇게 되면 일이 두렵지 않게 된다. 1년전에 공공디자인과 관련하여 공공디자인 각 구별 제안서를 올리게 되었다. 자치구에서 500미터 가량 디자인거리를 조성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공공디자인 하고 컴퓨터 쳤더니 권영걸 교수 이름과 공공디자인학회가 나와서 무조건 전화를 해 권영걸교수를 찾았더니 서울시로 갔다고 하더라. 그래서 부회장을 만났더니 한양대 교수였는데 바로 언제 오라고 약속을 해 주었다. 마포구가 홍익대를 안찾아가고 멀리까지 찾아온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면서 많은 조언을 주었다. 한시간동안이나 교육을 받았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느꼈다. |




















2009/04/29 13:06
문장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다듬어 주셨으면 합니다.
건승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