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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뽁이 팔아 1% 나눔을 실천하는 박음전 선생님께

2009/03/10 00:01
(사진 출처: 플리커)




아름다운재단에 일 하면서 나는 늘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왜냐하면 감동이 있는 하루 하루를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늘 많은 기부자들의 감동어린 사연들이 답지하였다. 그 중의 한  분이 바로 박음전 선생님이었다. 아마도 내가 선생님이라고 하면 손사래를 치며 "무슨 선생입니꺼, 그냥 아줌마로 부르면 되예"라고 항변할 것이 틀림없다. 울산 해변에서 산책나오는 사람들 상대로 커피 팔고 떡뽁이 팔아 매일매일 1천원씩 따로 저축하여 아름다운재단에 보내주는 분이었다. 자신이 도움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남을 도우려 나서는 이 분을 보면 늘 아름다운재단이 잘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곤 했다. 어느 해인지 기억도 안나는데 우리 간사들이 박선생께 편지를 써 보라고 해서 써 준 기억이 난다. 그 편지가 이렇게 남아 있다.

박음전 선생님, 안녕하세요. 뵌지가 벌써 몇 달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여름철 휴가 때문에 수입이 조금 나아지리라고 생각했는데 태풍.홍수가 계속되면서 사람들 발걸음이 끊겨 박선생님의 영업도 걱정이 되는군요.

우리 박선생님은 울산의 어느 포구에서 행상을 하고 계십니다. 그 행상이라는 것도 번듯한 것도 아니고 그 포구에 나오는 주민들이나 여행객들을 상대로 커피.음료수.과자 따위를 파는 허름한 행상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제가 일하고 있는 아름다운재단이 벌이고 있는 1%나눔운동에 참여하셨지요. 그리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박선생님은 멸치 한상자를 보내오셨지요. 저희 간사들 고생한다고 그걸 먹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어떻게 그걸 먹을 수 있겠어요? 그렇게 고생하셔서 번 돈으로 사주신 것인데요.

그래서 저희들은 재단 행사때 그 사연을 이야기하고 경매에 붙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분이 그걸 30만원에 사셨고 그 돈을 우리는 멸치한상자기금의 종자돈으로 삼기로 결정했습니다. 비록 큰 돈은 아니지만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분이 오히려 남을 돕자고 내 놓은 돈이니 얼마나 가치있는 돈이고 기금입니까? 그 후 다시 박선생님은 매일 3천원씩 적립해서 그걸 모아 한달에 금 한돈씩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미 10돈이 더 넘어 우리가 고스란히 그 기금에 넣어놓고 있답니다.

저는 우리 박선생님을 보면서 세상에 나누지 못할 부 또는 가난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온 세상이 재산을 늘여가기 위해 치열한 아귀다툼을 벌이고 바로 그 재산 때문에 온갖싸움을 벌이고 심지어 형제간에도 그럴 지경이 되었습니다. 저는 변호사 하면서 그런 일을 너무 많이 보았지요. 그래서 자식들에게 재산을 많이 남기는 것만큼 바보짓은 없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답니다.

박음전 선생님이 언젠가 우리 재단 행사에 한번 참석을 하셨지요.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우리 재단에 자신의 전재산 5천만원을 기부하신 정신대 김군자할머니 예를 들면서 “나는 그런 끔찍한 경험도 안하고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데 내가 조그만한 그런 일을 했다고 그걸 어떻게 훌륭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을 하셨지요. 하기야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겠어요?

박선생님 아시듯이 저도 언젠가부터 변호사일을 그만두고 시민운동이랍시고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는 못난 가장이 되고 말았는데요. 돈이란게 없으면 불편할 때가 많이 생기더라구요. 그런데 그것도 습관이 되고 적응이 되니까 차츰 괜찮아지긴 하던데 그래도 가난을 뛰어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요? 우리 박음전 선생님을 뵈면서 저도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우리 박선생님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때로는 변호사 그만둔 것을 후회할 때가 있으니까 말입니다.

저희 애들이 둘인데요, 박선생님. 여자 아이는 이제 대학교 1학년이고, 남자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에요. 몇 년전 저는 아이들 앞에서 “니네들 대학 들어가서 입학금과 첫학기등록금만 대 줄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라고 선언을 했지요. 애들이 한참 심각하게 생각하더니 그러면 1학년까지만 해 달라, 그러면 나머지는 아르바이트를 하든, 장학금을 받든 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타협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응해준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생각이 되더군요. 그렇지만 요즘 속으로는 나중에 이 애들이 유학을 가거나 결혼을 하면 그래도 뭔가 좀 도와줘야 할텐데 아버지가 되어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할 것 같아 가슴이 아픈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 박선생님을 보면서 저는 또 위로를 받습니다.

하기야 저도 시골에서 책가방하나 짊어지고 서울로 왔지요. 공부 열심히 해서 변호사도 되었지요. 사람들은 변호사가 되면 큰 부자가 되는 줄로 알더라구요. 그러나 부자가 된 변호사보다 저는 더 부자입니다. 우리 박선생님 같은 분도 만나고 좋은 분들 만나서 세상에 좋은 일들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시대에 진정한 부자는 물질적 부자가 아니라 이렇게 마음이 부자인 사람들이라고 저는 자위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기부문화운동을 하면서 어느 때는 큰 위로를 받고 또 어느때는 절망을 느끼곤 합니다. 희망과 절망을 하루에도 몇차레씩 교대로 느끼는 것이지요. 우리 박선생님 외에도 어떤 분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장애인이 계신데 이분도 1%나눔운동에 참여하고 계시고, 또 구두닦이 하는 분도 역시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런 분들 뵈면 희망이 막 샘솟지요. 작년인가에 저희들 재단에서 우리사회에서 이웃을 위해 자신의 생명과 인생을 바치는 사람들 이른바 의인이 적지 않은데 이런 분들이나 그들의 가족을 위해서 뭔가 기금을 하나 만들자 이렇게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의인기금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이걸 언론에 소개했더니 전화가 엄청 많이 왔는데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돈을 내놓으시겠다고 한 분은 거의 없었고 그래서 70여만원이 모였습니다. 반대로 그 돈 좀 쓸 수 없는가 문의하신분이 대다수였습니다.

물론 저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결코 인색한 국민들은 아니라고 봅니다. 텔레비젼에 ARS보면 순식간에 억대의 돈이 모이지 않습니까. 더구나 우리 박선생님을 비롯해서 1%운동에 참여하는 수천명의 기부자들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요. 아마도 아직도 기부를 꺼리는 분들을 보면서 제가 생각하는 것은 그런 기부금을 받은 자선단체들을 우리 국민들이 충분히 믿지 않고 있는게 아닌가. 그리고 미국이나 선진국처럼 세금감면혜택을 제대로 주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무튼 박음전선생님, 너무 고단하게 일하시지 말고 언제까지나 건강하세요. 그래야 이런 좋은 일도 계속하실 수 있는게 아닌가요. 그리고 저희들도 우리 박선생님에게 늘 감사하고 또 격려받아 더욱 잘 할께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아름다운재단의 박원순 드립니다.

2009/03/10 00:01 2009/03/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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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홍이님의 믹시 박홍이 2009/08/31 15:13 Delete
  1. 해변밍크
    2009/03/10 21:45
    좀 전에 초등학교 다니는 딸아이 일기쓰는 것을 보니 '나눔'에 대해 쓰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옳거니 하고 딸아이에게 이 글을 읽어주니 "엄마도 저 상황에서 저렇게 할 수 있겠어?" 라며 질문을 하네요..^^;
    전..아무대답도 못했습니다.
    예~역시 실천이란 참 어렵습니다--;;
    • 박원순
      2009/03/10 22:17
      아니 아이에게 박음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실천을 하신 것이지요. 늘 저는 나눔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아름다운재단의 중요사업으로 나눔교육을 하고 있답니다. 좋은 선생님들의 나눔교육연수, 부모와 아이들의 나눔캠프 등이 그것이지요. 이런 아이들이 자라면 더 좋은 세상이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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