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토요일 열이틀째 -뭄바이에서


빈민가의 기적

어젯밤 우리는 뭄바이로 이동하였다. 오늘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벌써 마지막 날이 되다니 세월은 빨리도 흘러가누나. 날씨가 덥고 설사도 조금 했고 몸이 조금은 힘들었다. 그래도 우리 간사들과 좋은 일행이 함께 했으니 그나마도 견딜 수 있었다. 이제 여행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으니 나이 탓인가?

우리가 탄 차가 점점 고개마루를 올라간다. 가이드 이야기로는 여기가 옛날옛적에는 밀림이었단다. 그러나 지금도 밀림이다. 허름하고 낡고 지저분한 집들의 밀림이다. 우리나라의 70년대 산동네의 모습 그대로이다. 역시 번지가 없는 탓인지 현지 가이드와 운전자임에도 몇차레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유턴하고 왔다 갔다 하더니 어느 골목 앞에 차를 세웠다. 그러고도 길가 집이 아니어서 골목을 한참 들어간 뒤에야 우리가 찾던 Creative Handicraft를 만날 수 있었다.


사무실을 들어서자 말자 꽃목걸이를 일일이 일행들의 목에 걸어준다. 사무실이 입구 게시판에는 Welcome Beautifulstore라고 써 놓았다. 꽃목걸이를 걸어준 분은 회장이라고 하는데 얼굴이 성실하고 진지한 50대의 여성이다. 이 조직 안에서 한 그룹을 이끌고 있고 그 그룹은 이 가난한 동네에서 일종의 푸드뱅크 일을 하는 분이다. 부녀자들을 모아 음식을 만들고 이것을 밥을 굶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이다. 허리가 굽은 노수녀님의 얼굴도 보인다. Isabel Martin이라는 이름의 스페인 출신의 수녀로서 이 동네에 와서 빈민선교를 하면서 1984년 이 사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두어명의 스페인 처녀도 눈에 띄인다. 대학생들로서 방학기간동안 자원활동을 하고 있단다. Jony Joseph가 코디테이터라는 직책으로서 사실상 이 조직을 총괄한다. 이 분은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네팔에서도 근무했고 지금은 이 곳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Isabel Matin 수녀님은 이미 은퇴하여 이 단체의 아무런 직책을 맡고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아직도 봉사하고 있다. 이 수녀님이 쓴 글의 일부이다.


My dear friends, Greetings from my small office at Creative Handicrafts, next to the famous Mahakali Caves! As I sit down to pen these lines I watch the setting sun cast its fading light over the roofs of hundreds of chawls and hutments spreading out below my window, giving them golden touch. Such beauty in such unlikely place!

Fifteen years ago I found myself and my companion sisters in Shree Ganesh Krupa Colonym Jogeshwari East. We thus became slum dwellers and like every body else we too lined up for our turn at the common toliet and water tap. We lived wall to wall with crying babies at night, with the smell emanating from kerosene stoves - - - We witnessed many a brawl, heard the cry of battered women, the shouts of drunken husbands - - -We witnessed the toil, the sweat, the smiling and lovely faces of the women who together with their sisters throughout the country made India the great nation.

Creative Handicrafts의 Creative한 특징은 그룹조직에 있다. 마을의 가난한 여성들이 그룹을 구성해서 오면 이들을 하나의 생산단위로 지정해 준다. 이 그룹의 생산품을 사무국에서 사 주고 그 대금을 받아 그 그룹의 책임하에 분배한다. 이러한 독립채산제의 운영형태는 이 그룹과 그 구성원의 자활의지를 높이게 된다. 이들은 고용되었다기 보다는 자신들이 하나의 독립적 사장이 되는 것이다. 그룹들의 생산현장은 사무실과 크게 떨어져 있지 않은 여러 가옥들에 흩어져 있었다. 생산공장이래야 겨우 허름한 주택들이었다. 프랑스의 CCFD등 여러 기관의 지원으로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일하는 여성들은 Isabel수녀님의 말대로 모두가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생산형태와 분배형태가 이렇게 사람을 좌우하기 마련이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시골에서 누나들은 ‘오비’라는 일을 해서 부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일본 여성들이 입는 기모노의 제작 과정의 일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한올 한올을 짜집기 하기 위해 우리 누나의 온 신경과 눈을 빼앗고 있었다. 라디오를 통해 들리는 가요는 노동요에 다름아니었다. 누나 옆에서 놀면서 들었던 그 유행가들을 그래서 아직도 많이 기억하고 있다. 한올한올 손으로 짜집고 하나하나 손으로 풀붙여가면서 만들어내는 이 공예품은 이들의 온 정성을 모아 만들어지는 희망의 산물이다. 굶주림으로부터, 가난과 불행으로부터 이들을 탈출시키는 통로이다. 그 동네를 나오면서 보니까 입구에서는 웬 대낮에 술먹은 두 남자가 멱살잡이를 하면서 싸우고 있다.


PRINCE WALES박물관과 CRAWFORD MARKET

점심을 먹고 나서 식당 인근의 Prince Wales 박물관을 찾았다. 원래 방문하기로 한 엘레판타섬은 거세게 몰아닥치는 파도 때문에 포기하였다. Price Wales박물관은 인도의 고대에서부터 중세, 근대에 이르는 각종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나라가 가난해서인지 박물관의 규모와 전시내용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인도의 문명과 역사를 파악하는데에는 대단히 유용한 박물관이었다. 특히 힌두교의 발상과 발전, 다양한 신들의 형태를 직접 보면서 인도인들의 삶과 신앙을 이해할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나는 간디가 살았던 기념관을 들르기를 바랬지만 일행들은 이제 마지막날 쇼핑을 원했다. 하기야 돌아가면 동료들과 가족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해야 한다. 외국에 처음 나왔다는 간사의 숫자가 거의 반이 되었다. 여행가이드북에 소개되는 CRAWFORD MARKET을 찾았다. 거기로 가는 도중에 인근의 공원들과 중앙역을 지나쳤다. 런던의 빅토리아역에 못지 않는 거대함과 화려함을 갖춘 중앙역은 영국식민당국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었다. 정교한 건물외관의 조각품들은 차라리 예술품들이라고 해야 옳다.

CRAWFORD MARKET은 19세기에 영국식민시대에 만들어진 시장이다. 그 건물 일대 모두가 시장으로 변해 있다. 인산인해다. 건물과 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난다. 간신히 인파를 헤치고 가게를 들어가보면 막상 살 것이 별로 없다. 생활필수품은 조잡해서 이걸 사들고 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 옛날 CRAWFORD MARKET건물을 들어가니 그속에는 청과상들이 집결해 있다. 수박이나 오이등은 영락없이 우리의 과일과 다름이 없다. 크게 잘 익은 석류가 탐스럽다. 우리가 오래 묵을 것 같았으면 듬뿍 사다가 간사들을 주련만 오늘 떠나는 날이니 이것도 사 갈 수가 없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시장구경만 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뭄바이의 마지막 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Marine Drive를 잠깐 지나쳤다. 시원하게 뻗은 바다를 길게 면한 이 도로와 해변은 인구 1천만이 넘는 이 거대도시의 시민들의 휴식처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 해안도로의 야경을 ‘여왕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해안가에 면한 건물들이 고색창연하다. 식민지시대에 건설되었을 듯한 이 건물들은 이제 낡고 헐었는데도 수선을 못한 채 황폐화되어가고 있다. 거기에 비닐문을 해 달고 유리창을 해 넣은 것이 언발란스다. 식민지 모국은 여전히 부와 영광을 구가하는데 식민지에서 해방은 되었지만 이들의 삶은 여전히 빈곤과 고난으로 가득차 있다.

밤의 뭄바이는 또 달라진다. 특히 우리가 묵은 이 최상급의 Mariott호텔에서는. 어젯밤 우리는 재단 간사들과 나이트클럽을 들렀다. 인도의 젊은이들이라고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 청바지에 아슬아슬하게 차려입은 상의. 진한 화장과 굉음에 흔들어대는 율동은 낮에 본 인도의 모습과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 상반된 모습에 혼란이 온다.

겨우 열이틀에 걸친 서남아시아들의 여행을 끝냈다. Micro Credit과 Alternative Trade의 두 화두를 가지고 나왔었다. 이 두가지 과제를 가지고 충분히 탐사하고 분석할 여유가 없었다. 이 가운데 Micro Credit은 우리와 사정이 많이 다르므로 더욱 연구해 보아야 할 과제이다. 다만 그 발상은 사회복지와 빈곤해방의 중요한 단서임에 분명하다. 빈곤의 굴레를 타파하기 위한 실험으로서 이 Micro Credit은 연구되어야만 할 소재이다. 또한 대안무역은 어김없이 추진할 수 있는 좋은 시찰거리였다. 여러곳을 방문하면서 역시 현장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물건이 좋은 곳이라 할지라도 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좀 바꾸는 노력이 부족하다면 우리가 대안무역하는 이상을 충족시켜 주기 어렵다. 그렇다고 팔리지도 않을 물건을 사 들인다는 것도 어렵다. 이 딜레마를 우리가 해결해 가면서 무역을 하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유익하고 좋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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