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 수요일 아흐레째


SIPA's CRAFTLINK -첸나이

First Fair-Trade Handicrafts Shoppe in South India!

Patrons - Welcome to be our Partners in Fair-Trade!

Variety of Handicrafts, Handloom and Textiles Artistic and Functional Items.

Directly from thousands of Artisans & Voluntary Agencies(NGOs) working with the Marginalized artisans across the country Fair-Trade consumers contributes for socio-economic development.


이 지역 관광 안내 책자에 적혀 있는 남인도생산자협회(South India Producer Associations)의 쇼룸을 찾아가는 것이 오전 일정이다. 우리는 어제 오후에 뉴델리 국내선 공항에서 이곳 첸나이로 이동하여 여기서 밤을 지냈다. 숙소로부터 나와 30여분 시내 거리를 통과하였다. 첸나이 시내는 사실 뉴델리와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오토릭샤가 철철 거리에 넘치고 출근 시간인지 거리 양쪽을 사람들로 꽉 채운채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예의 그 매쾌한 매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 쇼룸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종류별로 전시실을 분리하여 꾸며놓았을 뿐만아니라 전시의 방법도 훨씬 세련되어 있었다. 이곳 직원들의 이야기로는 이곳은 순전히 판매만 하는 곳으로서 사무실과 생산공장은 별도로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여 공예품을 생산하는 센터도 있고 개별 생산자들의 물건을 모아 이렇게 전시해 놓고 판매도 한다. 물론 내국인에게도 팔고 있다. 이런 가격이라면 내국인이 사기는 싶지 않을 듯 싶다. 인도의 경우에는 모든 수출품에 대해 세금이 면제되기 때문에 오히려 외국인이 사가면 20%의 감면을 해 준다고 한다.

시간이 없어 이들의 생산현장과 사무실은 들러지도 못하고 향후의 물건 수입방안과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물건들의 샘플만 골랐다. 이렇게 여러 곳을 들러 샘플을 모아가지고 가서 가격과 품질과 이들의 사업내용을 놓고 수입물건들의 종류와 량을 결정하고자 한다. 이제 이렇게 우리들의 대안무역계획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가고 있다.


Dalit Human Rights Center(DHRC) -불가촉천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Yesumarian 변호사(그냥 Yesu라고 불러도 좋다고 한다)는 DHRC의 설립자이며 Director이다. 프랑스 CCFD의 곽은경씨가 소개해 준 단체이다. 이들이 점심식사를 한 곳까지 와 주어서 함께 길의 안내를 받으며 그곳으로 떠났다. 거의 한 시간 이상 시골길을 달려서 닿을 수 있었다. 제법 깨끗한 3층짜리 건물이 눈 앞에 나타났다. 제수이트 교단이 많이 도와서 이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예수변호사가 능력이 있는 사람인게 분명하다.

여기는 그 이름부터 인권센터인데 실제 활동도 그렇다. 우선 이 가난하고 헐벗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해 법률구조활동을 벌이고 이들의 인권을 위해 월간 잡지를 발행하고 이들이 법률공부를 해 변호사가 되게 공부를 시키고 있다. 실제로 예수변호사가 맡고 있는 사건 가운데에는 땅사건, 차별사건 등의 사건목록이 들어있다. 한 교회가 이 불가촉천민들에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앉아 기도할 수 없도록 하여 이를 따지는 소송도 하고 있다. 세상에 어떤 교회가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인도헌법 17조에는 분명히 카스트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떤 불평등과 차별도 용인되지 아니한다고 씌여 있다. 그러나 인습은 헌법보다 높고 종교보다 강한 모양이다. Dalit라고 불리는 이들 불가촉천민들은 오늘도 도축.청소 등 험하고 궂은 일만 하도록 요구받으며 어느 곳에서도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Yesu변호사는 자신도 Dalit 출신이라고 한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도 엄청난 수모와 모욕과 차별을 받았다. 매일 수십건의 Dalit에 대한 공격이 벌어지고 그 가운데 사망하는 사람도 생겨날 정도라고 한다. 그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변호사가 된 후에도 이들의 인권을 위한 길에 나섰다. 인도도 한국처럼 변호사의 지위는 보장되어 있음에도 그는 이 험한 길로 나서 네 번이나 구속되었다고 한다.

이 곳 건물의 입구에도 복도에도 볼 수 있는 동상과 부조가 있다. 바로 Ambedekar라는 사람의 것이다. 그는 간디와 함께 인도 독립운동도 벌였고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철폐운동도 벌인 사람이다. 그 스스로 불가촉천민이기도 한 그는 이들 Dalit들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Ambedekar나 Yesumarian같은 사람들의 투쟁과 노고에도 불구하고 Dalit들의 조건과 상황은 크게 나아지고 있지 않으니 이게 인도의 한계이고 불행이다. 법률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인도헌법 1조를 외워보라고 했더니 외우지 못했다. 이런 실력으로 변호사가 된다는 것은 꿈을 꾸기 어렵다. 그러나 꿈을 꾸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이들의 꿈, 모든 굴레와 억업과 인연에서 해방되는 꿈을 이루기 바란다.


남루한 거리에도 사람은 살고 있다

다시 우리는 폰티체리로 이동했다. 폰티체리는 과거 프랑스가 잠깐 지배했던 도시로서 프랑스의 유산이 많이 남아있고 그런 인연으로 지금도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내일 보고자 하는 오로빌 공동체의 설립자도 사실 프랑스 사람이다. 그러나 폰티체리 시내에 특별히 프랑스 유적이 남아있는 것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프랑스 사람들이 사는 동네는 따로 있다고 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 길거리 산책길에 나섰다. 우리가 묵은 호텔 바로 옆에는 극장이 하나 있었다. 굉장히 크고 멋있는 건물이었다. 나라는 가난한데 사람들은 위안거리가 필요한 법인가. 꼭 우리나라 영화관 같이 유명한 배우들과 그들의 액션 또는 사랑의 장면들이 극장 앞에 내걸려 있다. 이나라에서 영화배우는 특별한 사랑을 받는다고 한다. 바로 이 타밀주에서도 역대 영화배우들이 지사를 한 사례가 많다. 이들의 동상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바로 그 옆에는 결혼식장이 있다. 결혼식은 밤 12시나 새벽 4시에도 벌어진다. 그 예식장 앞에는 오늘 결혼할 남녀의 이름이 크게 걸려 있다. 물론 이런 곳에서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은 부자들일 것이다.

곳곳에는 STD.ISD.FAX라고 씌여져 있는 간판이 있었다. 국내전화.국제전화.팩스를 보낼 수 있는 곳이고 한다. 간이우체국인 셈이다. 그래도 이런 곳이 시내 곳곳에 있는 것을 보니 현대 문명과 완전히 동떨어진 곳이 아님을 알겠다. 아니 저쪽 골목에는 삼성.LG의 전자제품판매가게, 이쪽 골목에는 스즈키 오토바이 판매가게가 보인다. 동떨어지기는커녕 이 곳에도 현대문명은 너무도 깊숙이 침투해 있다. 온 지구가 다국적기업과 전자제품과 자동차와 코카콜라가 지배하고 있다.

다행히 영어로 씌여져 있어 읽기가 가능하다. 사실 타밀어는 힌두어와는 완전히 달라 우리와 함께 한 가이드 싱씨도 모른다고 한다. 읽을 수도 말할 수도 없다. 그래서 자기도 여기에서는 외국인이라고 능청을 떤다. 인도의 화폐인 루피에도 14종의 문자로 표시되어 있다. 말하자면 공용어만 이 14종에 영어가 추가되어 있다. 그 외의 부족끼리 쓰는 언어까지 치면 이 인도대륙에는 1.600여종이 있다고 하니 거대한 대륙은 대륙이다. 그러나 이제 이 영어와 외부 문명의 물결이 이렇게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으니 얼마동안 이 언어들과 이들 토착 문화가 남아 있을지 걱정이 된다. 풍전등화 - 이것이 오늘 인도 문화의 위상이 아닐까.

좀 더 진전하니 힌두사원이 나온다.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보기로 했다. 신발을 완전히 벗고 들어가야 한다. 마루에는 물기와 습기, 많은 사람들의 땀이 그대로 배어 있어 끈적 끈적했다. 그것을 밟고 들어갈려니 찝찝하다. 냄새 마저 난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수많은 사람들이 내뱉었을 그 공기 때문에 불결한 느낌이 든다. 이미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사람들은 계속 들어온다. 앞에는 사제들이 서 있다. 건장한 남자들인데 웃옷은 모두 벗고 있다. 이 사제들은 당연히 브라만이다. 카스트의 최정상급에 있는 계급이다. 수트라는 이 사원에는 들어오지도 못한다. 이렇게 한 부류의 인간을 완전히 제쳐놓은 종교가 종교일 수 있는가.

우리도 이들이 나누어주는 우유(聖水라고 한다)를 손바닥에 받아서 사람들이 하는대로 따라 마셨다. 그리고 사원 밖으로 나오니 한 거지가 손을 벌린다. 제법 나이가 든 할머니다. 그 옆에는 사원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꽃을 파는 행상들이 몇 사람 보인다. 길가에는 리어카 같은 도구 위에 판자를 깔아놓고 자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였다. 집이 없는 것인가. 그래도 여기는 뉴델리나 아고라 같이 거지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까 그 결혼식장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오늘 또 하나의 부부가 이 본티체리에서 탄생한다. 이렇게 여기도 사람들은 남루한 가운데 기도도 하고 영화도 보고 결혼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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