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서초동에 있는 변호사회관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변호사회관 1층 입구에 동상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바로 이병린변호사님의 동상입니다. 이병린 변호사님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아주 유명한 인권변호사였습니다. 어떤 변호사가 그 분에 대해 쓴 글을 한번 인용해 볼까요? 고우(故友)여 태안(泰安)하라 북악(北岳)도 잘 있거라 이병린이라는 이름의 변호사가 있었다. 유신독재 시대에 저항했던 의인이요, 시대의 사표가 될 만한 변호사였다. 1964년 대한 변호사협회장의 자격으로 소위 6.3비상계엄해제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인권에 관한 건의서’를 발표해 계엄법위반으로 옥고를 치렀다. 박정희 독재정권의 인권탄압이 극에 달했던 1971년에는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하여 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그는 당시 중앙정보부의 집중사찰 대상이 되었고, ‘돈벌이성’ 변론활동을 할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궁핍해졌고, 건강은 날로 악화되어 가던 75년 겨울에 그는 아무 연고도 없는 곳으로 길을 떠났다. 먼길을 홀로 떠나면서 그는 벗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남겼다. ‘떠나면서’는 이병린 변호사가 남긴 편지에 적힌 자작시(詩)다. (김한주, 2006년 12월 1일자 거제중앙신문) 이런 행적때문에 이병린 변호사를 의인으로 부르는데 모든 변호사가 동의합니다. 그의 동상이 변호사회관앞에 서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집중사찰 대상"이 되었다는 부분이 눈에 띄입니다. 그 시대에도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사찰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역사가 참 많이 발전하고 진화된 것 같지만 오늘 국정원이 하는 짓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그런 역사의 진보가 일어나고 있는지 참 안타깝기도 합니다. 더구나 그 시대 대한변협회장은 강대한 독재권력에 맞서 할 말을 하고 감옥까지도 갔지만 오늘의 변협이나 서울변협이 과연 국가공권력의 횡포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더욱 비감이 듭니다.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는 인권과 사회정의를 위해 노력한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변호사는 돈벌이와 이익 추구의 수단이 되어 있을 뿐 얼마나 인권을 위해 일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난 시대 인권변호사들이 이룩한 변호사들에 대한 위상은 지금 많이 허물어져 있습니다. 변호사가 다시 권력에 맞서고 그럼으로써 국민의 존경을 받는 날이 그립습니다. 의인 이병린이 그립습니다. |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런 말들을 들을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반성이 됩니다.
저도 배운만큼, 있는만큼 제대로 실천하고 나누며 사는 사람인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며 바른 것을
지키기위해 오늘도 고분분투하는 이땅의 많은 '의인'들..화이팅!!